이하의 뉴욕 아트 뒷담화 2편. 뉴욕 지하철의 공공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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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0 10:46
 
뉴욕 지하철은 더럽기로 아주 유명하다. 진짜 더럽다. 약주를 하신 양반들이 기둥에다 볼일을 봐서 그런지 오줌 지린내가 진동하고, 비만 쥐는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고, 찌그러진 깡통 덩어리처럼 생긴 열차는 지독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달리고, 툭하면 지하철 운행이 멈춰 사람들을 고생시킨다. 요금도 2,500원 정도로 비싸고 인터넷은 물론 휴대전화도 안 된다.
 
뉴욕에 처음 살게 되었을 때 지하철역 바로 내 앞에서 쥐 새끼가 뛰어가기에 본능적으로 달려가 발로 차버렸다. 시골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 쥐는 우리 농작물을 먹어 치우는 적(敵)이었기에 보이는 대로 잡아야 했다. 그래서 그 후로도 쥐를 보면 습관적으로 잡아 왔던 터라 그 쥐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달려가 차버린 것이다. 근데 공교롭게도 그 쥐가 20여 미터를 날아가 어떤, 무섭게 생긴 중년 여성 엉덩이에 맞아버린 것이다. 오 마이 갓∼ 내 평생 영어로 그렇게 많은 욕을 들어보긴 첨이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어떤 영화를 보니, 어떤 녀석이 지하철역 안에서 노트북으로 채팅을 하던데, 이건 완전히 구라다. 뉴욕에선 지하로 1미터만 들어가도 죄다 먹통이 된다.
 
가장 불편한 점은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몇 군데 있긴 있다. 하지만 한 번 들어가 보고 다시는 가지 않는다. 질식해 죽는 줄 알았다. 오줌 싸다 질식사하면 참 민망할 것 같다. 누군가 뉴욕 지하철은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에(1904년 개통) 낡고 지저분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는데, 그럼 오래된 지하철은 청소도 안 하나?
 
뉴욕 지하철이 그나마 좋은 단 한 가지 이유는, 180센티미터짜리 10등신을, 쭈∼아∼악∼ 빠진 슈퍼 모델을 30센티미터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헤엑∼ 헤엑∼
 
또 지하철역 어디를 가나 예술가의 공연이 많아 심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지하철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고, 열차 안에서 텔레비전도 틀어주고, 휴대전화로 텔레비전도 볼 수 있다고 미국인에게 말해 주면, 그들은 무슨 공상과학영화를 말하는 줄 안다. 최고로 웃겼던 반응은 다음과 같이 묻던 친구다.
“너희 나라에도 지하철이 있니?”
 
50개 주 가운데 가장 비싸게 세금을 받아 처먹는 뉴욕 주, 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참 의문이다.
한국 지하철역에는 생각보다 많은 공공 미술 작품이 설치되어 있지만 뉴욕 지하철에는 예술가의 작품이 거의 없다. 공공 미술은 노출되는 외부에 설치되어야 하기 때문에 재료의 한계가 있다. 그리고 보존의 특성상 지하철역 공공 미술에는 타일 작품이 많이 들어간다.
 
뉴욕 지하철 몇 군데에서 타일로 제작된 공공 미술을 보았다. 매일 수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할 수 있으니 지하철에 예술 작품을 설치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다. 
 
오늘은 뉴욕 8번가 지하철역에 설치되어 있는 브론즈 작품을 소개해 드리겠다.
내가 볼 땐 뉴욕의 보물중의 하나이다.
 
(하수구 괴물이 돈다발 머리를 잡아먹고 있다)
 
(참 돈 많아 보이는 돈다발 머리 신사)
 
 
작가는 톰 오터너스(Tom Otterness)란 양반이다. 환경 조각과 공공 미술 분야에선 아주 유명한 작가이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조각 공원에도 그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1952년생이고 스튜디오는 브루클린에 있다.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뉴욕에서도 그의 작품을 여러 곳에서 봤다.
 
8번가 지하철역 조각 작품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3년여에 걸쳐 설치한 작품이다. 작품 크기는 캐릭터 하나가 20센티미터 정도로 작지만, 역사 내 구석구석에 수십 점이 설치되어 있다. 작품 제목은 ‘지하 인생(Life underground)’이다.
 
악어에 물려 허둥대는 자본가, 지하철역을 지배하듯이 오만하게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자본가, 동전을 긁어모으고 있는 경찰, 돈다발 꾸러미 위에 근엄하게 서 있는 경찰, 꼬마의 동전을 빼앗는 신사, 도망치는 노숙자와 쫓아가는 경찰, 거대한 가제 집게에서 헤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가족들, 동전을 초콜릿처럼 갉아 먹고 있는 거대 쥐 등등.
 
그의 작품은 조각품이 아니라 만화 캐릭터를 보는 듯하다. 꽤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 명랑한 작품들이다. 돈다발 머리를 한 자본가, 노동자, 노숙자, 경찰 등의 캐릭터를 통해 자본주의의 천박함을 귀엽게 꾸짖고 있다. 그의 작가 노트를 읽어 보니 실제로 그는 소싯적에 정치 활동을 한 적이 있다고 적혀 있다.
 
그의 작품이 재작년에 최초로 한국에 설치되었다. 일산 쪽에서 공사하는 아파트 단지에 그의 조형물이 들어왔다. 동전은 미국 동전이 아닌 우리 돈 100원짜리와 500원짜리로 되어 있다. 그의 이름이 갖는 가치 때문에 무척 비싼 가격에 들여왔을 것이다. 그 10분의 1 가격으로 나에게 맡겼다면 더 멋진 걸 만들어 줄 텐데. ㅋㅋㅋ
 
(경찰과 돈다발 머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경찰들이 돈을 쓸어 담고 있다)
 
(지하철 계단 통로 난간위에 설치된 작품)
 
(신사분이 동전을 나눠주고 있다)
 
(작은 꼬마에게 동전을 나눠주는 걸까? 꼬마 돈을 빼앗는 걸까?)
 
(부분 확대 사진)
 
 
 
 
(돈다발위에 신사, 그 위에 여자가 걸터앉아 책을 보고 있다)
 
(꼬마와 신사의 다른 각도의 모습)
 
(돈다발위에 근엄하게 서있는 경찰관)
 
(신사와 여성의 다른 각도의 모습)
 
(기둥에 설치된 작품)
 
(천장위에 설치된 작품)
 
(돈다발 머리를 한 가재모양의 괴물이 집게발로 한 가족을 잡고 있다. 가족들이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다)
 
(돈다발을 안은 신사가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확대사진)
 
(뉴욕의 거대 쥐가 동전을 갉아먹고 있다. 이작품은 이명X 전 대통령께 보내야 할 거 같다)
 
(경찰이 여성노숙자를 바라보고 있다)
 
예술가라면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번 상대적으로 생각해 보자.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자본으로의 가치를 만들기 위한 생산성이다. 소수의 자본가가 엄청난 부를 거둬들이는 제도가 정말 건강한 구조인지는 고민해야 한다.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생산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자본주의 구조에서 도태되고 상처받고 바보로 취급받는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시 쓰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돈놀이로 수억, 수조 원을 버는 금융인, 노동자를 착취해 엄청난 부를 거둬들이는 기업가보다 생산성이 낮다고 대체 누가 판단할 수 있나? 왜 우리가 그런 기준에 놀아나서 가난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가?
 
자본주의에 맞는 생산성 향상이 우리 사회의 이념이 되고 철학이 되고 목표가 되고 진리가 되고 있다. 이게 과연 옳은 것인지 예술가들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린 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목숨을 좌우했던 중세 시대를 한심한 제도라며 욕하고 있고, 군주가 농민의 재산을 박박 긁어 가던 봉건 시대를 골 때리는 제도라며 비웃는다. 그렇다면 언젠가 새로운 시대에는 경쟁을 통한 생산성에 목숨 걸었던 자본주의 시대를 인류 역사의 수치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그 부자들을 동경하고 그들처럼 되고자 하지만, 우린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우리가 수조 원을 버는 사람이 될 확률은 화성인과 고스톱 쳐서 ‘쓰리고’에 ‘피박’으로 이길 확률보다 적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좌파여야 한다고 믿는다. 현실 문제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뭔가를 꿈꾸고, 이상을 좇고, 뭔가를 창조하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선 좌파를 빨간 놈들이라며 이념적으로만 보고 있으나 거룩한 좌파의 신념을 그런 허상의 비난 때문에 포기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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