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뉴욕아트 뒷담화 5편. 개를 패죽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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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0 11:30
 
비록 지금은 내가 제법 인간의 꼴값을 떨고 있으나 어릴 적의 나는 부끄럽기 그지없는 호래자식이었다. 내가 그런 호래자식이 된 이유는, 같은 동네에 살았던 역시 호래자식인 동네 형님들의 영향이 컸다. 난 그 형님들의 갖은 악행을 보면서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것인 줄 알았다. 내가 봐 온 문화가 그것뿐이었으니 나도 그렇게 물들었던 거 같다. 물론 내 잘못이 더 클 것이다. 당시 만났던 형님들 가운데는 그 후 비극적인 삶으로 끝난 경우도 있다. 생각해 보니 그 양반들에 비하면 난 정말 성공한 인생이다.
 
그 시절, 내가 고3 때, 개망나니 습성으로 살 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 시골 동네는 나지막한 구릉지에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형태이고, 언덕 제일 꼭대기에는 제일 부잣집이 살고 있었다.
 
경운기가 재산의 기준이 되던 시절이었는데, 그 집엔 트랙터도 있었다. 그 집의 첫째 아들은 고개가 항상 5분 전으로 기울어 있어서 동네 사람들은 ‘삐뚤이네’라고 불렀다. 삐뚤이 형의 아버지는 사냥광이었다. 시간만 나면 엽총을 들고 꿩이랑 오리를 잡으러 다녔다.
 
그래서 그 집엔 사냥개가 많았는데, 개 새끼들이 어찌나 사나운지 툭하면 줄을 끊고 달려가 지나가는 동네 꼬마들을 물어서 원성이 자자했다. 짜증 날 정도로 지독하게 짖어대는 사나운 놈들이었다. 동네 맨 꼭대기에 있다 보니 돌아갈 수도 없고, 동네에서 제일 부잣집이라 마을 사람들은 제대로 항의도 못 했다.
 
어느 무지무지하게 더운 여름날, 불쾌지수가 99퍼센트인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그 집을 지나고 있는데, 역시나 그 싸가지 없는 개 새끼들이 뒤에서 짖어대고 있었다. 꾹 참고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내려다보니 으악∼∼∼
 
사냥개 두 마리 중 덩치가 큰 녀석이 줄을 끊고 달려와 내 장딴지를 물고 흔드는 게 아닌가. 순간…… 순간, 난 이성을 잃었다. 그렇잖아도 패 죽이고 싶었던 그 재수 없는 개 새끼가 내 다리를 물다니!
 
난 자전거 안장 위에서 공중으로 2미터를 날아올라 택구네 집 앞마당에 착지한 다음, 그곳에 널브러져 있는, 참나무로 만든 묵직한 작대기를 집어 들고는 달려드는 그 덩치 큰 개를 향해 돌격했다. 내 눈에서 살기를 느꼈는지 그 개는 움찔했다. 내 작대기는 허공을 가르며 그 개의 대가리를 정통으로 맞혔다.
 
깨갱 소리가 한 번 들리더니 그 우라질 개 새끼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난 우사인 볼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 개를 추격했는데, 그 멍청한 개 새끼는 저 멀리 들판으로 도망치지 않고 자기네 집 근처에서만 뱅뱅 도는 것이었다. 끝까지 쫓아갔다. 도망치던 그놈이 막다른 골목으로 쑥 들어가더니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입구를 막고 포위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패고, 패고, 또 패고, 정말 하염없이 팼다. 더럽게 힘들었다. 거의 30분을 팼더니 나도 지쳐 헉헉댔다. 난 패다가 지쳐서 게거품을 물었고, 그놈은 맞아서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잠깐 쉰 다음 몇 대 더 팬 후 뒤돌아보니, 삐뚤이네 할머니랑 택구네 엄마, 진구네 엄마가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너무 무섭게 패니까 감히 말리지 못하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삐뚤이 아저씨가 우리 집에 들이닥쳤다. 개가 죽었단다. 난 정말이지 그놈이 뒈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와 삐뚤이 아저씨가 대판 싸우기 시작했다. 결국 개 값 받으러 온 삐뚤이 아저씨는 그냥 돌아갔다. 동네 사람들이 죄다 우리 집 마당으로 싸움 구경 와서는 삐뚤이 아저씨에게 그 맞아 뒈진 개 새끼가 하도 사나워서 동네를 못 돌아다녔다며, 아주 잘 뒈졌다고 우리 아버지와 내 편을 들어준 것이다.
 
며칠 후 제사를 지낸 다음 음식을 먹다가 그 개가 생각났다. 그래서 다음날 갈랍(충청도 사투리, ‘전’이라는 뜻이다.)을 몇 개 싸서는 그 집으로 찾아갔다. 자기 동료를 살해한 놈이란 걸 아는지 날 보자마자 개 새끼들이 이상한 신음을 내면서 도망가려고 발버둥 치는데, 묶여 있는 끈 때문에 도망도 못 가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놈들 앞에다 갈랍을 던졌다. 돌아오면서 봤더니 녀석들이 순식간에 갈랍을 처먹고 있었다. 그 뒤로 그 집을 지날 때마다 남은 도시락 음식이 있으면 그놈들 앞에 던져놓고 왔다.
 
웃기는 일은 그 사나웠던 개 새끼들이 나를 보면 아주 묘한 자세와 표정으로 바뀌었는데……. 꼬리는 최대한 내려 항문에 찰싹 붙이고, 붙인 상태에서 꼬리를 살살 흔들고, 두려워서 그런지 눈깔은 날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면서, 그러면서 나에게 서서히 다가온다.
 
내가 던져 주는 음식 찌꺼기에 길든 것이다. 자기 동료를 살해한 놈이란 걸 알면서도 그놈들은 몇 번 던져 준 음식으로 인해 자존심 같은 걸 버린 모양이다.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건 그놈들은 사냥개 구실을 못 한다며 삐뚤이 아저씨가 개장수한테 팔아버렸다.
 
 
 
 
 
 
 
(이하,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 2011~2012, Mixed Media & 설치)
 
(이하,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 2011~2012, Mixed Media & 설치)
 
(이하, 꽃미남 병사 시리즈, 2011, 캔버스위에 바느질)
 
(이하, 눈물 시리즈, 2012, 인화지에 프린트)
 
(이하, 눈물 시리즈, 2012, 인화지에 프린트)
(이하, 역사의 추억 시리즈 -무한도전, 2012, 인화지에 프린트)
 
 
요즘 한국 뉴스를 보면 내가 오래전에 살았던 그 시골 동네의 그 개들이 생각난다. 친일파와 독재자의 폭정에 죽임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불합리에 분노하면서도 그 독재자가 던져주는 돈 몇 푼에 침을 질질 흘리며 좋다고 하며, 그 불합리와 비상식에 빠르게 적응해서는 자신 또한 불합리와 비상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배를 불린 사람들이, 온갖 치사한 짓을 하면서 그 폭정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좀 합리적이고 상식 있는 문제 제기에 대해선 온갖 거짓말과 핑계로 기를 쓰며 반대하고, 그 몰상식으로 만든 자신의 푸짐한 ‘뱃대지’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심사로 목숨 걸고 만들어 놓은 민주주의를 망치고 있다.
 
우린 꼬랑지나 살살 흔들면서 그 던져 주는 갈랍에 황송해 하며 받아먹으라고 교육받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해 그 갈랍을 빼앗으라고 교육받았다. 저항하지 말고 순응하며 사는 게 훌륭한 삶이라고 교육받았던 우리네 시절은 정말 시대의 비극이었다.
또다시 부패한 친일파들과 독재자들이 한국의 권력을 잡았다. 그리고 또다시 그들은 괴상망측한 법과 경제와 교육을 만들고 있다. 그 독재의 단맛을 아는 권력자들과 그들이 만든 언론과 기관들은 사람들에게 갈랍 한 덩이에 꼬리를 살살 흔들라고 강요한다.
 
타락한 정당과 그 정당에 속한 대통령의 지지도가 50퍼센트라는 뉴스를 볼 때마다 온몸에 있는 세포가 녹아내리는 듯한 절망감과 슬픔이 밀려온다. 새로운 민주국가를 만들기 위한 시련이라고 보기엔 참으로 고약해 보인다.
 
그들이 이겼고 우린 졌다. 그들은 온갖 부정이란 부정은 다 저지르면서도 언제나 승리한다. 우린 언제나 패배하고 좌절한다. 그렇게 그들은 희망을 가져가고 미래를 빼앗아 간다. 언제나 그렇게 끝난다. 우리는 졌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만 그건 순진한 생각이다. 아마도 민주주의가 실패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운명인가 보다.
 
거대한 타락이 승리하는 것이 한국의 운명이라면, 그 타락과 싸우는 것 또한 우리의 운명이다. 진정한 정의가 뭔지 아는 이들은 이 운명에 맞서야 한다. 적어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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