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뉴욕아트 뒷담화 6편. 뉴욕의 Graffi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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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0 11:40
 
 
3박 4일 동안 뉴욕에서, 하루에 300불짜리 호텔에 머물면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옥상에 올라가 쌍안경으로 63빌딩만 한 건물이 끝없이 늘어서 있는 맨해튼의 빌딩 숲을 보고는 뿌듯한 기분으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것과 그곳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뉴욕의 집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그곳은 전세나 보증금 딸린 월세 개념이 없다. 무조건 월세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비싸다. 집값이 비싸니 당연히 월세도 비싸다. 디파짓(Deposit)이란 이름으로 두 달 치 월세를 보증금처럼 내고, 나중에 나갈 때 돌려받는다.
 
나는 현재 텍사스로 이사해 산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방 5개, 화장실 3개가 있는 집인데, 집값은 한국 돈으로 1억 5천 정도 된다. 물론 내 집은 아니다.
 
텍사스의 면적은 미국에서 가장 크다. 석유 때문에 미국 연방 중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주다. 면적은 69만 제곱킬로미터이다. 남·북한 합친 한반도 면적은 22만 제곱킬로미터이다. 얼마나 큰지 상상이 가시나? 거의 한반도의 3배 크기다. 그럼에도 인구는 남한의 반으로 2천만 명밖에 안 된다. 텍사스에서는 1만 달러(천만 원)로 지평선을 살 수 있는 곳도 있다. 한국에서 20층짜리 빌딩을 살 돈이면 텍사스에서는 울릉도만 한 크기를 살 수 있다.
 
집을 팔려고 내놓은 집에는 ‘포 세일(For Sale)’이란 푯말이 꽂혀 있다. 오픈 하우스는 들어가서 구경할 수도 있다. 오픈 하우스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축구장만 한 정원이 딸린 2층짜리 저택에 개인 영화관과 수영장까지 있는데, 그 집은 30만 불(3억)이다. 50만 불짜리 집은 미니 골프장까지 있더라. 뉴욕에서 30만 불짜리 집은 방 2개 있는 더러운 아파트가 고작이다.
 
뉴욕에 처음 가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더니, 에어컨도 없는 가로세로 2미터짜리 방 한 개가 한 달에 1,200불(120만 원)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기겁을 하고 나왔다. 뉴욕의 보통 서민은 대개 한 집에 룸메이트 여럿이 살고 있고, ‘하꼬방’같이 싼 방이라도 한 달에 50만 원 정도 한다. 한국의 원룸처럼 방 안에 화장실과 부엌까지 있는 집을 스튜디오라고 부르는데, 싼 스튜디오는 1,500불(150만 원) 정도 한다.
 
내가 뉴욕에 살 때는 주로 브루클린 지역에 살았다. 뉴욕은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백인과 유색인종 지역이 뚜렷이 나뉘어 있는데, 브루클린은 상대적으로 유색인종 지역이 많다. 그래서 집값이 싸다. 물론 동네 분위기는 좋지 않다. 가로등이 있어도 꼬마들이 모두 깨버리기 때문에 밤에는 칠흑같이 어두운 곳도 있다. 그러나 범죄를 당한 적은 없다. 내 꼬락서니가 워낙 ‘찌질’했기 때문인가 보다.
 
명품 가방과 명품 옷을 걸친 채 고급 카메라로 이 동네를 배회하며 사진 찍던 일본인 여성 관광객 두 명에게 동네 흑인 청년이 다가가 카메라를 빼앗아 가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냥 자기 것인 양 쓰윽 들고 걸어간다. 워낙 덩치 큰 흑인이라 일본 여성은 뭐라 하지도 못하고 빤히 쳐다보고 있기에 내가 가서 그 흑인에게 내가 아는 사람이니 돌려주라고 해서 돌려준 적이 있다. 그 흑인은 평소 거리에서 안면이 있던 친구였다. 미국에서는 뭐든 내가 할 이야기를 당당하게 이야기하면 대화가 통한다. 그리고 제발 화장 진하게 하고, 명품 옷으로 빼입고는 위험한 지역으로 가지 말자. 뉴욕의 치안은 한국과 다르다.
 
내가 브루클린에서 살았던 집은 40년 정도 되었고, 그 정도면 신축 건물 축에 든다. 어찌나 더럽던지 처음에 이사 가서 2박 3일간 청소했다. 건너편 방에 사는 백인 여자는 내가 걸레로 거실 바닥을 닦는 걸 보더니 걸레질을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신기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집에서 사는 동안 내가 잡은 쥐만 7마리다. 쥐를 잡은 날에는 백인 여자가 나에게 ‘샤방샤방’하게 인사한다. 내가 쥐를 잡으면 왜 그리 좋아하던지…….
 
뉴욕에서 룸메이트는 남녀 구분이 없다. 대학 기숙사도 남녀 구분이 없다. 여자들과 한집에 살면서 정말 중요한 걸 하나 깨달았다. 더러운 여자는 웬만하게 더러운 남자보다 더 더럽다는 걸.
 
금요일만 되면 이 친구들은 무조건 파티를 한다. 서양 영화에서 보는 그런 로맨틱한 파티를 기대한다면, 기대할 필요 없다. 정말 재미없다.
 
바퀴벌레는 풍뎅이만 해서 쌀이 떨어진다면 그놈을 잡아먹어도 연명할 거 같다. 또 방음이 안 되어 위층에 사는 할머니가 코딱지 후비는 소리까지 들린다. 뉴욕에 온 지 얼마 안 된 한국 여자애가 새벽에 침대 밑으로 쥐가 지나가는 걸 보고는 무서워서 3일 동안 침대 밑으로 못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지하게 웃었다.
 
미국인과 함께 사는 것에 환상을 가지고 있다면 확실히 깨시라. 한국인이야 만나서 몇 마디 해보면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견적이 나오지만, 얘들은 당최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러나 함께 살아 보면 얼마나 개념 없고 무책임한지 알게 된다. 미국 영화를 보면 방세 안 내고 버티는 세입자 모습이 간혹 나오는데, 실제로 그런 ‘배째라족’이 많다. 법적으로 주인이 쫓아낼 수 없다. 정말 ‘어처구니없고 무책임한’ 뉴욕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향긋한 미소에 마음 설레지 마시라.
 
어느 날, 전기세가 갑자기 30만 원이 나와 전기 회사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계량기를 확인 안 하고 고지서를 보낸 거였다. 이곳은 전기를 개인 회사가 공급하고 지역마다 전기 회사가 다르다.
 
근데 고지된 건 어쩔 수 없으니 돈을 다 내란다. 이런, 씨X랄, 나는 되지도 않는 영어로 한 시간 동안 따져서 겨우 반을 깎았다. 상상할 수 없이 거대한 하드웨어지만, 생각보다 빈약한 소프트웨어가 뉴욕이다.
 
미국엔 공기업이란 개념이 없다. 모든 건 개인 회사이다. 전기를 아무리 아껴 써도 십만 원은 나온다. 지독하게 느린 인터넷도 5만 원씩 한다. 공공의료보험도 없다. 개인 보험 회사에 들어야 한다. 보장이 거의 안 되는, 가장 싼 의료보험이 50만 원 정도 한다. 돈을 원 없이 쓰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미국에 오셔서 병원에 입원해 보시라. 하루 입원비만 백만 원이다.
 
공기업 민영화를 한국의 정치인이 하려고 한다고? 이런 미친…….
집이 주거의 개념이라면 뉴욕의 집은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예술 표현의 장소이기도 하다. 벽화가 징하게 많다.
 
 
유명한 그래피티(graffiti) 화가들과 그룹들은 GANO, NOAH, LASE, MERES, POIS, ELIK, YMI CREW, CERN, SEC 3, SMITH, ZEPHYR....등등 수없이 많다. 때로는 벽화의 상품성을 보고 기업체나 갤러리에서 홍보의 수단으로 이 양반들에게 그래피티를 의뢰하기도 한다.
 
 
 
 
 
 
붓에 물감을 묻혀 벽에 칠하면 물감이 굳으면서 막이 형성되는데, 벽에 습기가 차면 막이 떨어져 그림이 손상된다. 그리고 자외선을 견딜 물감은 지구상에 없다. 그래서 제대로 벽화를 제작하기 위해선 벽의 때를 완전히 제거한 다음 물감으로 그리고, 마르면 투명 물감으로 코팅해야 한다.
 
그러나 뿌리는 재료를 쓰면 벽의 작은 틈새에도 물감이 들어가기 때문에 관리 없이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 또 아주 싸게 먹힌다. 비싼 물감 살 필요 없이 스프레이 서너 개면 근사한 벽화를 만들 수 있다.
 
 
지금은 특별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온갖 것을 다 했는데 주로 용접을 하러 가거나 벽화를 그리러 나갔다. 요즘은 한국의 각 지자체에서 공공문화사업을 꽤 많이 하고, 예산의 많은 부분이 벽화 제작에 들어간다. 벽화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업체도 많다. 덕분에 벽화 아르바이트 거리는 많았다. 전문 작품으로서의 벽화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이 있는 벽화를 제작해야 하고, 최대한 빨리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작품으로서의 벽화를 할 기회는 없었다.
 
뉴욕의 벽화는 제도권에서 소외된 가난한 흑인의 열망과 절망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발달하다 보니 아무래도 흑인이 많이 사는 브루클린과 맨해튼 할렘가에 많다. 스프레이가 없었다면 진즉 흑인 폭동이 일어났을 거다.
 
 
 
뉴욕의 벽화 미술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하철뿐만 아니라 길거리 뒷골목 등 도시 곳곳 온 사방 벽에 페인트와 스프레이 등으로 그린 그라피티가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그라피티’는 원래 이탈리아어 ‘그라피토(graffito)’에서 온 말로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뉴욕에 이민 온 이탈리아 사람이 가장 먼저 시작한 게 아닌가 하고 짐작한다. 가난한 사람과 흑인 등 억눌리고 소외된 계층, 비주류 계층이 도심의 벽에 강한 원색과 속도감 있는 문양을 새김으로써 그들의 에너지와 좌절감을 쏟아낸 것이다.
 
그라피티는 처음에 저급한 ‘양아치의 낙서’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키스 해링(Keith Haring),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같은 낙서 전문 작가가 출현하면서부터 현대미술의 한 장르가 된 것이다. 키스 해링이나 바스키아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작가들인데, 현재 이들의 작품은 엄청난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얼마 전부터 그라피티 전문 작가가 ‘뒷골목 낙서’ 형태로 다리 밑이나 골목길에 그리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건 정치인의 얼굴을 스텐실로 만들어 뿌리고 다니는 작품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홍대 뒷골목에 가면 제법 근사한 벽화를 쉽게 볼 수 있다.
 
뉴욕 벽 그림의 호시절은 간 듯하다. 뉴욕에 살 때 브루클린 거리에서 벽화 작업을 한참 준비하고 있는 팀을 본 적이 있다. 호기심으로 건너편에서 구경하고 있던 차,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서는 그들을 거칠게 쫓아내는 걸 봤다. 벽화 그리다 경찰 총에 맞아 죽으면 참 억울할 것이다.
 
누군가 신고한 모양인데, 그걸 보니 이제 뉴욕의 명물 벽화 그리기도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았다. 실제로 뉴욕에서는 벽화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형태의 벽화들이 실험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건너편에서 빔을 벽에 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볼 만한 벽화도 있지만 대부분은 보시는 바와 같이 비전문가들에 의해 꼬부라진 글씨로 채워진, 의미 없는 그림들이다. 어떤 곳은 동네 전체가 옥상이고 벽이고 저런 글씨 그림으로 채워진 동네도 있다. 품질 떨어지는 글씨 그림 천지는 공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화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대략 난감 벽 덩어리에 약간의 예술적 감각을 더한다면 도시는 좀 더 따끈따끈하게 바뀔 수 있다.
 
뉴욕 같은, 중구난방으로 의미 없는 꼬부랑글씨 그림을 그리자는 게 아니다. 그림이 아니어도 연구를 좀 하면 얼마든지 예술적 장치로 아름답고 멋진 효과를 낼 수 있다.
 
대한민국의 황량한 도시들이여, 벽 그림 좀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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