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아트 뒷담화 7편. 나의 고향은 충청도 시포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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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0 11:48
 
내 고향은 충청도 시골이다. 동네 이름은 시포리이다. 현대식 행정구역이 정해지기 전에는 ‘씨애’라고 불렸다. 노인들은 지금도 우리 동네를 씨애라고 부른다. 동네 이름이 무슨 욕 비슷해서 좀 거시기 하지만, 난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내 고향을 사랑한다. ‘포(한자로 浦인지, 蒲인지는 모르겠다)’ 자가 들어간 지명은 역사적으로 항구나 어물전 시장이 열린 곳이다. 우리 동네 시포리도 바다의 허리를 뚝 끊어버린 ‘아산만’이 생기기 전엔 어물전 시장이었다. 지금도 우리 동네 앞엔 ‘개고랑’이라 불리는 어물전 시장 흔적이 남아 있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만 해도 우리 동네엔 초가집이 기와집보다 많았다. 그 당시엔 현관문이란 게 없었고 얼기설기 대충 만든 대문이 있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문을 닫아 놓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집 안에 사람이 있든 없든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바로 옆집에는 춘자네(큰누나 이름이 춘자)가 살았는데, 아버지 심부름으로 그 집에 갈 때면 그냥 들어가서 “기셔유?” 하고 말하고, 아무 대꾸 없으면 그냥 필요한 걸 가지고 나오면 되었다. 물론 그 집 식구도 우리 집에 와서 똑같이 한다. 네 것 내 것의 구분이 별로 없었다.
 
뭔가를 해주면 말을 안 해도 당연히 뭔가를 받는 ‘품앗이 문화’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 인절미를 만들어 가져다주면 다음날 그 집에선 백설기를 해서 가지고 온다. 시골에서 자란, 나이 좀 자신 분들은 이해할 것이다.
 
근데 어딜 가나 왕따가 있듯이 우리 동네에도 왕따가 한 집 있었다. 큰아들이 ‘듭북’이란 이름을 써서 듭북이네로 불렸다. 워낙에 그 집안사람들이 유별나서 동네 사람들은 그 집에 얼씬도 안 했다. 그 집의 엄마는 정말이지 사나운 분이셨다. 잘못해서 그 집에 들어갔다가는 물바가지를 뒤집어쓰곤 했다.
 
그런데 그 집은 커다란 대문을 항상 잠그고 살았다. 집 안에 사람이 있으면 집 안쪽에서 문을 잠그고, 동네 앞밭에 일하러 나갈 때조차 커다란 자물쇠로 철커덩 잠가 놓고 나갔다.
 
근데 참 신기한 일은, 그 당시엔 문을 훌러덩 열어 놓은 채 며칠 동안 집이 비어 있어도 도둑맞는 일이 없었으나 그 집은 툭하면 도둑을 맞는 것이었다. 도둑이 들면 들수록 그 집은 더더욱 문단속을 철저히 했지만, 그래도 영락없이 도둑놈이 들어가 돈이나 물건을 훔쳐갔다. 듭북이네보다 더 잘사는 부잣집도 많았으나 신기하게도 유독 그 집만 털리는 것이었다.
 
(Oliver Herring, The Sum and Its Parts, 2000)
 
(Oliver Herring, PATRICK, 2004, 베네주엘라 출신의 올리버 헤링이란 작가이다. 인체의 구석구석을 촬영하고 조각조각 오려내어 다시 모형인체에 사진을 붙여 작업을 한다)
 
 
잠간 학교 다닐 때 잠깐 만난 헬리아나(Heliana)라는 이름의 콜롬비아 여학생과 친하게 지낸 적이 있었다. 하는 짓이 아주 귀여운 녀석이다. 어느 날, 그 귀여운 녀석에게 저녁을 해주겠노라고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근데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심각하게 한참을 생각한 다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몇 시간 후 내게 초대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약속 날, 드디어 그 녀석이 우리 집에 왔는데, 오 마이 갓∼ 맨날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고 다니던 녀석이 가슴골이 깊게 파인 야한 드레스에, 생전 안 하던 화장마저 진하게 하고 온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난 왜 이 녀석이 그토록 내 초대를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인지 이해가 갔다. 그 문화에서 저녁 초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닌 바로 ‘그런 것’이었다.
 
녀석은 내가 만들어 준, 올리브오일을 뿌린 샐러드와 양념한 돼지갈비, 감자 수제비를 아주 맛있게 먹고 갔다. 지금은 콜롬비아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보고타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 같은 곳이다. 내가 본 학생 중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녀석이다.
 
맘씨 좋은 아저씨처럼 생긴, 구템베르그(Gutemberg)라는 브라질 친구가 있다. 브라질에서는 고등학교 선생이면서 농부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유기농 농산물을 파는 유니온 스퀘어(Union Square) 그린 마켓으로 시장 조사를 나간다.
 
그는 영어를 배우러 미국으로 왔다. 그의 꿈은 아마존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아마존 보호 운동을 하는 것이다. 룰라 대통령을 광적으로 지지한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서 우리가 만나면, 언어가 잘 안 통하지만, 한동안 정치 토론을 한다. 너희 ‘쏘스 꼬레아(South Korea를 이렇게 발음한다)’는 어떻게 삼성과 엘지 같은 대기업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우린 서로의 언어를 몇 개씩 가르쳐 주곤 했다. 아주 유쾌한 아저씨라 내가 느닷없이 ‘레그아옷(좋다는 뜻으로, 브라질 공용어인 포르투갈어)’이라고 소리치면 그도 ‘쪼아∼’라고 맞받아친다.
 
릴리아(Lilia)라는 뚱뚱한 멕시코 아줌마 친구가 있다. 대배우 ‘로버트 드 니로’의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다. 그녀의 집에 가보면 드 니로에게 받은 선물이 있다. 일 년에 한 번씩 드 니로에게 선물을 받는단다. 목제 가구 같은 것이다. 드 니로는 어떠냐고 물으니 아주 좋은 사람이란다. 그의 부인은 흑인인데, 그녀는 몹시 거만하고 불친절해서 싫단다.
 
릴리아의 큰아들은 드 니로가 뉴욕에서 운영하는 영화 학교에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둘째 아들은 마약 장사를 하다가 잡혀서 멕시코 교도소에 있다. 둘째 아들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들 걱정에 눈물을 흘리며 훌쩍인다. 45살인데 벌써 할머니다. 그녀의 딸과 손녀는 멕시코에 살고 있다.
 
2주일에 한 번씩 봉급을 받고, 봉급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손녀에게 보낼 선물 보따리를 싸는 것이다. 엄청난 선물 박스를 보낸다. 손녀에게 선물 보낼 때가 가장 행복하단다. 그녀의 남편은 온종일 소파에 앉아서 멕시코 방송을 보고 있다. 화나지 않느냐고 물으니 왜 화가 날 거로 생각하느냐며 되물었다.
 
줄리(Julie)라는 이름을 쓰는 필리핀 간호사를 만난 적이 있다. 위장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만난, 날 담당했던 간호사였다. 대뜸 한국인이냐고 묻기에 그렇다니까 무지하게 반겨 주었다. 중학생인 자기 딸내미가 맨날 한국 드라마와 가요를 듣는데, 딸에게 배웠다며 나도 모르는 한국 걸그룹의 노래와 춤을 흉내 냈다. 50살 정도 된 조그만 필리핀 아줌마가 허벅지를 비틀며 추는 춤과 노래는 소녀시대가 추는 춤보다 1,000배는 더 귀여웠다.
 
(Alfredo Jaar, 백송이 꽃봉오리, 2005)
 
(Alfredo Jaar, 끝없는 독방, 2004, 칠레출신의 알프레도 짜르란 작가이다. 공동묘지의 모습이 동영상으로 나오며 묘지 앞에 100송이의 꽃들이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어 인생사를 꽃을 빌어 표현했으며, 양쪽으로 대형거울을 설치하여 작은 독방들이 끝없이 펼쳐진 것처럼 보여 지게 하여 인간의 공통적인 두려움과 외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내가 외국에 나가 가장 소중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인간’을 바로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한마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소개했다.
 
틀림없이 저들도 우리처럼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우리보다 더 자연을 사랑하고, 순박하고 따듯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저들도 똑같이 꿈이 있고 사랑이 있고 아름답고 존경스러운 사람들이었다.
 
(김수자, 보따리 트럭)
 
(김수자, 보따리 트럭, 뉴욕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한국작가, 보따리 작가로 유명한 김수자씨의 작품이다. 트럭이나 손수레에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담은 보따리를 싣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찍은 영상작업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Shahzia Sikander, The Scroll, 2000)
 
(Shahzia Sikander, Perilous Order, 파키스탄 출신의 샤지아 시칸더란 작가이다. 종교적인 느낌을 추상과 구상을 섞어 표현하고 있다. 모든 물감들은 순수 자연에서 얻은 물감으로 그린다)
 
(Osorio, 명예뱃지, 푸에로토리코 출신 작가이다. 작가의 인생사를 함께 한 각종 오브제를 전시장에 가져와 전시하였다)
 
 
 
뉴스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을 닫는다. 나도 모르게 폐쇄적이게 되고 나도 모르게 주변 사람을 경계하게 된다. 누가 누구에게 사기를 치고, 누가 누구를 성폭행하고, 누가 누구를 죽이고, 실업자가 넘쳐나고,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일어나 군인들이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어떤 곳은 지진으로 아비규환이 되고…….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우린 주변을 경계하게 된다. 그렇게 세상 모든 이는 서로 경계하고 의심하고 미워하고 있다. 누군가 해코지할지도 모르니 우린 언제나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이처럼 우리가 다른 이를 미워하듯이 다른 이도 우리를 미워한다.
 
한국은 확실히 산업화에 성공했다. 또 우리 문화를 세련되게 표현하는 재주도 있어서 한류란 이름으로 문화를 수출한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수출하고 사랑과 화합의 문화 메시지를 수출한다면 대한민국은 존경받는 강대국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은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정치를 해야 하며, 어떠한 차별도 사라져야 한다. 인간은 모두 너무나도 아름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른 이를 존중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시골도 문을 잠가 놓고 살고 있다. 옆집도 뒷집도 앞집도 문이 철커덩 잠겨 있다. 훌러덩 열어 놓고 살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세상의 모든 이가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모든 세상의 문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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