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아트 뒷담화 제 8편. 스미소니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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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0 15:50
 
 
2011년 5월,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작은 갤러리에서 나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2009년부터 미술 작업을 시작했고, 2년 후 뉴욕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이니만큼 감회도 남달랐고 기분도 묘했다.
 
그 갤러리는 여느 갤러리와는 다르게 거리 쪽 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 거리를 지나는 시민이 모두 갤러리를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지나는 시민이 유리창 너머로 구경하다가 들어와 자세히 보고 가곤 했다. 전 세계의 유명 독재자들을 예쁘게 그려놓은 것이라 신기했던지 많이들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큰 반응이었다.
 
이에 고무된 갤러리 관장님께서, 그 갤러리의 관장님은 참 열정이 대단한 양반이었다. 어찌나 열심히 홍보를 하셨던지 뉴욕 타임스(NY TIMES), 뉴욕 데일리(NY DAILY) 등에서 취재를 온다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취재를 온다는 그날, 바짝 긴장하고 약속 시각인 저녁 7시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6시 반쯤 관장님께서 전화를 한 통 받으셨다. 빈 라덴이 죽었단다. 그래서 취재가 모두 취소되었단다. 내 작품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pretty dictator series)’ 중에 ‘빈 라덴’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론이 어디로 흐를지 몰라 신문에 그 작품을 게재하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날 밤에 진짜로 텔레비전마다 빈 라덴의 죽음을 속보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난 빈 라덴의 죽음을 보도 5시간 전에 알게 되었다.
 
(이하,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 Mixed Media, 2011)
 
(이하,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 Mixed Media, 2011)
 
(이하,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 - pretty Laden)
 
얼마후 NBC에서 일하는 선배를 만나는 자리에서 이 황당한 사건을 이야기하니 그 선배가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미국의 언론이 자유롭다고들 생각하지만 자기가 생각할 땐 한국이 훨씬 더 자유롭다고 생각한단다. 상식적이지 않은 이 말에 대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이유를 물으니, 미국의 언론은 <보도되지 말아야할 것>은 절대로 보도하지 않지만, 한국의 언론은 <보도되지 말아야할 것>을 <언젠가는> 발표한단다.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다. 그 <언젠가>가 무지하게 기다려진다.
 
 
 
미국엔 재능 있는 창작자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 대단히 많다. 세금을 피하는 방법으로 재단(Foundation)을 유용하게 이용하기도 하지만, 어쨌건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지원 프로그램은 큰 힘이 된다. 작가의 생활비까지 넉넉하게 지원해 주는, 아주 아름다운 재단도 많다.
 
2010년 겨울, 워싱턴 디시(Washington 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 박물관에서 열린,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 전시 때문에 미국의 문화 예술계가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
 
 
국립 자연사 박물관.
 
스미스소니언 재단(Smithsonian Institution)은 박물관 19개와 수많은 연구소를 운영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재단 중 하나이다. 스미스소니언에 소속된 국립자연사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은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2>의 배경이 된 곳이다. 그리고 스미스소니언은 국립박물관이다. 즉,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 박물관의 부속 건물 가운데 하나인 국립초상화박물관(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숨다/찾다: 미국 초상화의 차이와 욕망(Hide/Seek: Difference and Desire in American Portraiture)’이란 이름의 전시가 열렸는데, 그 내용은 미국 초상화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동성애자를 주제로 한 전시였다.
 
 
역시나 종교계와 보수 정치계에서 난리가 났다. 그들에겐 최고급 호텔에 손님을 모셔 놓았더니 웬 호모 나부랭이들이 와서 거실 소파에 똥을 싸지르는 걸로 보였을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된 작품은 20년 전에 작고한 보이나로비치(David Wojnarowicz)의 비디오 작품이었다.
 
(왼쪽이 보이나로비치의 비디오작품. 종교계에서 왜 난리 났는지 알만하다.
그의 비디오작품을 보시려면 구글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시라)
 
결국 존 뵈이너(John Boehner) 공화당 하원 의원은 전시를 철수하지 않으면 스미스소니언에 지원하는 자금을 줄이겠다고 협박했고, ‘낭심’이 확 쪼그라든 스미스소니언 재단은 보이나로비치의 작품을 철거해 버렸다.
 
존 뵈이너란 양반은 그 후 하원 의장이 된 거물 정치인이다. 미국의 하원 의장은 대통령, 부통령에 이어 넘버 3 서열이다. 지난번 연방정부 부채 문제로 오바마와 대가리 터지게 싸웠던, 오바마 정부에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린 양반이다.
 
(이 양반이 존 보너)
 
아무튼 스미스소니언의 작품 철거 후 동부 지역의 예술가 단체와 학술 단체가 들고 일어났다. 보수주의자들과 보수 정치인들이 미국의 문화를 통제하려는 데 대한 항거를 시작한 것이다. 이 시위는 꽤 적극적이고 효과적이어서 스미스소니언은 다시 보이나로비치의 비디오 작품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석 달 동안 매일 사람이 몰려와 시위를 해대니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2010년 6월 뉴욕주는 동성 결혼법을 통과시켰다.
 
뉴욕 동성애자들의 축하 퍼레이드 광경이다.
 
미국 내 극우 세력 티 파티(Tea Party) 또한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넣고, 문화정책을 좌지우지해서 곳곳에서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내가 한국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미술 작업을 시작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에 전시장에 내 그림을 걸었던 적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전시할 때마다 항상 문제가 생겼다. 물론 작품의 내용 때문이었다. 검사가 찾아와서 관장에게 내 작품을 떼라고 협박한 적도 있었고, 말없이 내 작품을 떼어 창고에 집어넣은 관장도 있었고, 떼라고 하도 보채서 그림 위에 종이를 덮어 이미지가 보이지 않게 한 적도 많았고, 센터에 있던 내 작품을 잘 안 보이는 구석 자리로 옮긴 큐레이터도 있었다. 항상 당하다 보니 이젠 그러려니 한다.
 
관장에게 협박하고 간 서부지검의 검사가 최고 대박이었다. 당시는 여럿이 전시하는 그룹전이었는데, 난 이명박을 작품으로 만들어 걸어놓았다. 검사가 들어오자마자 내 작품과 팸플릿의 이름을 유심히 보더니 관장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이 씨(작가)가 이 씨(이명박)를 왜 욕해?”
내 평생 들은 명언 중 최고의 명언이었다. 그 검사 양반도 이 씨였다. 이 씨는 이명박을 욕하면 안 된다. 박 씨들은 이제 입조심해야 한다.
 
유명한 전시장에서 전시한 적이 있다. 기획자가 나를 초대했다는 것은 내 작품의 성향을 잘 알기 때문에 초대한 거로 생각하고, 정치인을 그린 작품을 걸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역시나 작품을 설치하는 날, 큐레이터들이 와서는 정치인 작품은 곤란하니 떼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이미지 위에 종이를 덮는 걸로 타협을 보았다.
 
며칠 후 기획자가 인터뷰한 내용이 언론에 나왔다. 작가 스스로 종이를 붙인 것이라고 했다. 분명히 큐레이터들이 요구한 것인데, 이것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예술과 정치 자체가 원래 궁합이 잘 안 맞는 족속인데, 특히 보수 정치와 예술은 궁합을 떠나 원수 사이가 되는 거 같다. 최소한 문화 예술은 정치적으로 판단하지 말았으면 좋으련만 보수주의자들은 꼭 예술까지 정치적으로 재단하려는 고약한 습성이 있다. 예술은 예술이다. 예술은 정권을 찬양하는 도구가 아니라 풍자하는 도구다. 예술은 건드리지 말자. 예술은 누구도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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