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아트 뒷담화 10편. 종로 나치그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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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0 15:57
 
2011년 12월 8일 새벽, 나는 아주 재밌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명박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스티커 50여 장을 종로 일대에 붙이고 다녔던 것이다.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 미술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도저히 코딱지나 후비면서 이 시대를 볼 수 없어서 뛰쳐나갔다.
 
거사를 진행하기 전, 솔직히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당시는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상당했을 때였고, 그래서 예술가로서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풍자 포스터를 만들어 거리로 나갔지만, 어쨌거나 대통령이란 존재는 내 목숨을 좌우할 정도로 최고 권력자였기에, 난 공포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서 딱 한 장만 붙이고 튀려고 했다.
 
종로2가 버스정류장에서 첫 번째 포스터를 붙인 순간, 바로 뒤에 있던 젊은 총각이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쥐박이다∼! ㅎㅎㅎ”
 
난 순간 희열을 느꼈다.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붙였다. 그 새벽 거리에 있던, 꽤 많은 이가 부착 작업을 하는 내 모습과 그림을 보고는 환호를 질렀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놀랄 만한 일이었다. 제법 괜찮은 작품을 만들었구나 하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포스터를 붙이는 내 모습을 찍는 사람도 많았다. 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이명박 대통령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모두 이렇게 말했다.
“쥐박이다∼!”
“쥐새X다∼!”
“엠비 씨X놈이다∼!”
 
‘가카’께서 얼마나 버르장머리 없는 국민을 두고 계시는지 느낌이 팍 왔다. 그렇게 붙이다 보니 50장은 턱없이 부족했다. 다음엔 좀 더 크게, 좀 더 많은 양을 다시 붙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철수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 작품이 인터넷으로 빠르게 퍼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단지 내가 해야 하는 예술 행위로 생각했을 뿐이었으니까.
 
다음날부터 어찌 알았는지 기자들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길거리와 사법기관을 오가는 포스터 작가가 되었다.
 
 
(이하, 역사의 추억 시리즈 – 이명박, 인화지에 프린트, 2012)
 
 
 
 
 
예술가는 그 누구보다 과감하게 사회 발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건 예술가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어느 누구와도 이해관계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뭔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작품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다. 피카소, 앤디 워홀, 마르셀 뒤샹은 새로운 작품을 만든 게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을 만든 예술가이다.
 
그림을 잘 그리려고 노력하는 건 아마추어 세계다. 치열한 인생을 통해 작가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프로의 세계이다. 진정한 고수는 새로운 미학을 만들어 가는 작가이다. 미학은 철학이고 철학은 시스템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미학, 철학, 시스템을 만든 사람이다.
 
새로운 시스템에 도전할 땐 필시 탄압과 비난을 받게 된다. 기존의 관념과 관습으로는 새로움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움을 창조하는 예술가는 역사적으로 축복받은 존재이다. 적어도 정치가들보다는 앞서서 현실을 볼 줄 알고, 현실에 대해서도 발언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고,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도 항상 가지고 있다.
 
1992년 서태지는 방송에 단 5분 나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작품에 목말라하던 대중은 그 5분 만에 스타를 찾은 것이다. 2012년 싸이는 하루에 수천 개씩 뜨는 유튜브에 5분짜리 뮤직 비디오를 올렸다. 그리고 그 5분을 본 전 세계 10억 명은 열광했다.
 
대한민국에서 좀 더 많은 예술가가 탄생했으면 좋겠다. 거리 청소를 하든 사무원이든 영업직이든 학생이든, 그 모든 이가 자신의 영역에서 현실의 문제를 찾고, 새로운 현실을 과감하게 이야기하고, 또 새로운 시스템에 도전한다면, 그들이 바로 훌륭한 예술가이다.
 
미국에서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를 전시할 때, 루마니아에서 30년간 독재한 차우셰스쿠의 폭정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미국으로 망명한 한 아주머니와의 만남을 잊을 수 없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눈물을 글썽이며 차우셰스쿠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가족이 독재자에 의해 총살당한, 그 사회적인 상처가 내 그림으로 인해 위로를 받은 것이다.
 
그 아주머니와의 만남을 계기로 사회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상처는 치유할 수 있지만 사회적 상처는 치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하,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 mixed media, 2011)
 
 
오른쪽 분홍색 셔츠가 루마니아 아줌마)
 
 
그동안 총 스무 번 정도 기관의 조사를 받았고, 2건의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며, 스무 번 정도 재판정을 오갔다. 지금도 다른 혐의로 사법 조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나는 정치인을 풍자한 그림을 포스터로 만들어 거리에 붙이는 작업을 하면서도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이건 당연히 예술가로서의 권리와 자유이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과 유엔헌장에도 보장되어 있는 당연한 권리이다. 더군다나 예술가는 뭔가를 표현하는 게 직업이다. 난 내 직업에 충실했을 뿐이다.
 
예술가에게 표현의 형식이나 내용, 재료, 소재는 선택의 몫이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선택해서 내려주는 게 아니다. 뭔가만 그리고, 뭔가는 그리지 말라는 건, 개소리다.
 
대체 포스터 붙이는 게 뭔 죄란 말인가? 기관 조사를 받으면서 내가 받은 혐의는 주로 공공기물훼손, 불법광고물 부착, 선거법 위반, 건조물 침입 등 이런 것이다.
 
물론 난 내가 죄를 지었다면 깔끔하게 처벌받고 만다. 하지만 난 내가 받은 혐의를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겠다. 수류탄을 버스정류장에 설치한 것도 아니고, 광고물을 붙인 것도 아니고, 문을 부수고 건물에 침입한 적도 없으며, 어떤 정치인을 뽑지 말라고 써놓은 적도 없다.
 
내가 유일하게 죄송스러워하는 사람은 청소하시는 분이다. 그것도 내가 하루 뒤에 수거해 간다고 무수히 얘기했다. 물론 그렇게 해본 적은 없다. 경찰들이 모두 수거하시니까.
 
이런 행위에 대해 자꾸만 범죄자 이미지를 씌워서 정치인을 풍자하는 그림을 못 그리게 하려는 거 같다. 표현의 자유는 가장 소중한 민주주의의 가치이고, 우린 권력자를 뒷담화 깔 권리가 있다. 뒷담화 좀 깠다고 권력 있는 자들이 처벌하려고 드는 건 정말이지 치사한 짓이다.
 
법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일을 계속하고, 부당한 법과도 싸워 이겨야 우리 사회와 후대 작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누릴 토대가 만들어질 거라고 믿는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 때문에 극심한 사회적 상처를 받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순간적인 카타르시스라도 좋으니, 그 정치적 피로감을 풀어주는 예술가의 퍼포먼스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재수 없어 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정치에 대해 시원하게 엿을 먹여야 한다. 이 사회가 타락한 근본 이유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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