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아트 뒷담화 13편. 박근혜, 전두환 포스터 부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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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1 13:36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난 대학을 졸업생 중 맨 꼴찌로 졸업했다. 평점이 2.16이었고 졸업 학점도 모자랐는데, 정말 기적적으로 졸업했다. 지독하게도 학교에 안 갔고 교재를 사본 적도 없고 시험공부를 해본 적도 없다.
 
당시 난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인테리어 일을 몇 번 하니 계속 일이 들어왔고, 하다 보니 십장이 돼서 사람들을 불러 같이 일하는, 그런 일을 했다. 때로는 돈을 꽤 많이 벌기도 했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당시 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아주 소중한 걸 배웠다. 세상이 정말 타락했다는 것을.
 
20대 중반의 어린 십장은 나의 능력과 상관없이 내 열망과 욕심을 정확히 알고 있던,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하이에나 사장님에겐 먹음직스러운 한 마리 토끼였다. 뻔히 알면서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무리 정신을 똑바로 차려도 부지기수로 당했다.
 
아비규환의 타락한 세상에서 나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내가 이들보다 더 타락하든가, 아니면 이 게임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되어 살든가. 한때는 나도 타락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었지만, 해보니 그건 내 모습이 아니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내 이득을 취하는 건 역시 내가 아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깨달았다. 이 타락의 근본은 정치라는 것을. 타락한 정치가 제도권이 되면 그 사회에 타락의 메시지를 준다는 것을. 양심이나 정의가 아니라 권모술수와 불합리가 잘사는 방법이라는 메시지를.
 
그리하여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선생들은 제자들에게,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가르친다. 타락한 세상에서 잘살기 위해서는 ‘선빵’을 맞기 전에 먼저 선빵을 날리라고, 착하게 살지 말라고, 힘 있는 자에게는 고개를 숙이라고,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세상이 만든 인생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자신의 영혼을 가꾸기보다는 외모만 열심히 가꾸고, 얼마나 멋진 일을 할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까만 고민하는, 싸구려 인간들이 되어 간다.
 
이런 싸구려 자본주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근본에는 바로 싸구려 정치가 있다. 그래서 난 이 타락한 세상을 엿 먹이기 위해 정치인들을 주로 그리게 되었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거리에서 수많은 포스터 부착 퍼포먼스를 했고, 그럴 때마다 경찰서와 검찰청을 들락거려야 했다. 그중엔 이슈가 된 것도 있고 나만 아는 해프닝으로 끝난 것도 있다. 이슈를 바라고 퍼포먼스를 한 적은 없다. 기자를 불러본 적도 없다. 그냥 세상에 던졌다.
 
현장에선 참 재밌는 일이 간혹 벌어진다. 그림을 찢으려고 달려들던 아주머니, 험악하게 위협하던 택시기사, 좋은 일을 한다면서 음료수를 사다 주던 중년 신사, 아이스크림을 사준 청년, 사인을 받아 간 여고생 등등.
 
항의하는 양반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은 무관심하게 지나간다. 특히 비가 오거나 날이 추운 날에는 나를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감동할 때는 시민이 응원해 주고 갈 때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부산에서 만난 어떤 중년 신사이다. 박근혜 포스터를 붙일 때인데, 사실 그때가 가장 긴장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부산은 적진이었기 때문에. 서면 근처 어떤 동네에서 붙이고 있을 때, 한 중년 신사가 그림을 유심히 보고 계셨다. 우린 다음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해 계속 부착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놀라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우린 자동차로 이동했지만 그분은 부지런히 뛰어서 우릴 찾아왔기 때문이다.
“좋은 일 하십니다. 고생하세요.”
단 두 마디만 하며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건네셨다. 그리고는 미처 제대로 인사도 하기 전에 총총히 사라졌다. 더운 날씨라 아이스크림은 이미 녹아 있었지만 내가 지금껏 먹은 아이스크림 중에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었다.
 
특정 시공간의 사회에서 갖는 이미지가 있다. 경상도라는 특정한 공간에 사는 분들은 정치인을 보는 특정한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비극은 그 이미지와 진실이 상관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어떤 사물에서 갖는 이미지는 서너 개의 정보로 그것이 진실인 양 믿게 된다. 하지만 사물의 진실은 서너 개의 정보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만 개의 정보로도 진실을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2012년 6월 28일, 백설공주로 묘사한 박근혜 풍자 포스터 200장을 부산 시내 곳곳에 붙였다. 솔직히 경상도 사람이 뽑은 정치인은 나라를 이끌 만한 수준이, 즉 ‘영혼의 수준’이 안 되지 않은가.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건 공직선거법 93조 1항 위반으로 검찰의 기소를 받았고, 이후 재판에서 대법원까지 무죄를 받았다. 이 재판은 대법원 판결까지 2년이 걸렸고, 참 파란만장한 과정이 있었다.
 
공직선거법 93조 1항은 선거 전 6개월 동안 어느 누구도 어떠한 표현을 할 수 없게 만든 법이다. 난 이런 법이 있는지도 몰랐다. 지독하게 악법이었다. 악법을 꼭 지켜야 하나? 이젠 이런 법이 있다는 걸 알지만, 만약 다시 해야 한다면 난 다시 할 것이다. 악법은 굳이 지킬 필요가 없다. 싸워야 할 녀석이다.
 
이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을 때 흥미 있었던 일이 두 가지 있는데, 첫 질문이 이거였다.
“작가님이 우리 박근혜 의원 포스터 붙인 분이세요?”
 
‘우리’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이거 제대로 걸렸구나 하는 직감이 왔다. 내가 포스터를 붙인 날은 6월 28일이고 경찰 조사를 받은 날은 29일이었다. 박근혜 의원은 7월 10일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조사받으면서 되물었다. 어떻게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대통령 후보를 풍자했다고 해서 선거법으로 처벌할 수 있느냐고. 경찰께선 그분이 출마할 거라는 걸 모든 국민이 알고 있기 때문에 법 적용을 받는다고 했다. 세상에 미래 가치를 현재로 가져와 처벌하는 법이 어디 있지? 미래에 범죄를 저지를 거 같은 사람은 지금 당장 경찰에 자수해야겠다.
 
그 한 달 전 5월 17일에는 29만 원짜리 수표를 들고 있는 전두환 포스터를 제작해 그분이 살고 있는 연희동 일대에 붙였다. 당시 나는 광주문화재단의 5·18특별전 초대를 받아 전시 중이었고, 의미 있는 초대전을 하는 작가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다.
 
총 500장을 인쇄해 그중 200장을 들고 갔고, 약 70여 장을 연희동 일대, 즉 그분이 사는 곳 주위에 부착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5월 18일 하루 전이라 그 일대 파출소는 예민한 날이었나 보다. 포스터 붙이다 현장에서 체포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처음 파출소에 연행되었는데, 경찰끼리 과연 이것이 입건될 만한 사건이냐 아니냐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결국 서대문 경찰서장의 지시로 즉결심판에 넘겨졌다. 즉결에서는 청구 기각을 받았고, 다시 경찰 조사와 검찰 조사를 마친 후 약식명령으로 벌금 10만 원을 받았다. 경범죄처벌법 중 불법광고물 부착 혐의였다. 검사님이 볼 때는 이게 광고물로 보였던 거 같다.
 
17일 새벽에 연행되었다가 즉결심판 출두서를 받고는 오후에 광주로 내려갔는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그 사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나에 대한 기사가 떴고, 단 몇 시간 만에 광주에서 영웅이 되어 있었다. 전시장에 갑자기 수많은 광주 사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5월 17일은 5·18전야제가 열리는 날이고, 그날은 광주 사람이라면 무조건 시내로 나오는 날이다. 전야제가 열리는 구 전남도청 앞과 내 전시장은 가까운 거리였고, 기사를 본 광주 사람들은 행사장으로 가기 전에 전시장을 먼저 들른 것이다.
 
많은 분이 음료수를 사 오셨다. 맥주나 와인을 사 온 분도 계셨다. 도저히 내가 못 마실 거 같아 음료수를 받아 두었다가 다른 손님께 드렸지만, 또 다른 손님이 사 왔기 때문에 책상에는 음료수가 끝없이 쌓여 갔다.
 
당시 전두환 포스터는 500장 만들었고 그중 200장은 연희동 파출소에 빼앗겼으니 아직 300장이 남아 있었다. 그 300장을 전야제에 들고 갔더니, 시민들은 전부 한 장씩 달라고 부탁했다. 1시간도 안 되어 300장이 모두 사라졌다.
 
누군가는 예술가를 처벌하려고 기를 쓰고, 어딘가에선 영웅이 되고, 이 얼마나 웃기는 시대의 이야기인가.
 
그분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가실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역사에 위대한 분으로 남고 싶다면, 부정 축재하신 것뿐만이 아니라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광주로 내려가 옛날 전남도청 앞에서 무릎 꿇고 통성으로 광주 시민께 사과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건 대한민국이 가진 정치와 사회 문제를 한순간에 해소할 수 있는, 어떤 예술가도 하지 못한,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 -박근혜, mixed media, 160x120cm, 2012)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 -전두환, mixed media, 160x120cm, 2012)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 포스터 - 박정희, 김일성)
 
 
 
 
 
 
(눈물 시리즈 -김구, 160x106cm, 인화지에 프린트, 2012)
 
(눈물 시리즈 -체게바라, 160x106cm, 인화지에 프린트, 2012)
 
 
정치인을 그릴 때, 특히 독재자는 실물보다 화려하고 예쁘게 그린다. 70년 전 히틀러는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한 무서운 놈이었지만, 현재 히틀러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다. 지난 시절의 독재자들이 지금은 이미지만 남은 우스운 녀석으로 남아 있듯이 현재 독재자들도, 비록 지금은 두려운 존재이지만, 훗날엔 만화 캐릭터 같은 우스운 녀석들이 되기 때문에 귀엽고 예쁘게 그린다. 조롱하는 것이다.
 
역사에서는 결코 독재자가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 역사는 결국 민중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독재자의 말년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독재자들이 사적인 이익을 탐하는 정치인이라면 눈물 시리즈의 주인공은 민주주의나 일반적인 상식, 상식적인 가치, 인류애 등을 위해 일생을 바친 분이다. 대부분 억울하게 돌아가셨거나 암살당했다. 진정한 눈물을 흘렸던 분이기 때문에 눈물 시리즈로 제목을 정했고, 투명 물감을 떨어뜨려 눈에 눈물 한 방울씩 맺히게 표현했다.
 
한국에서는 상식을 말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일인 듯하다. 예술가의 당연한 권리를 지나친 법의 잣대로 판단하고, 범죄자 이미지를 덧씌워 정치를 풍자하지 못하게 하는 건 분명히 상식적인 일이 아니다.
 
예술가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의식을 정리하여 작품으로 발표하는 게 직업이다. 그래서 첫 번째 풍자 대상이 바로 정치와 정치인인 것이다.
 
역사는 지나친 법의 잣대를 기억하지 않는다. 사회를 풍부하게 만들어 준 예술과 예술가의 행위를 기억한다. 그래서 법으로 예술가를 탄압하는 순간, 법은 역사의 게임에서 지는 것이다. 처벌하면 할수록 1 대 0에서 2 대 0으로 지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나와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보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분이 간혹 있었다. 정치권에서 함께하자는 유혹도 있었다. 그 뜻은 정말 감동적이고 고맙지만 모두 거절했다. 이 일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독립된, 순수한 존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도움을 준 이와 작가는 본의 아니게 이해관계가 생기게 된다.
 
물론 돈을 많이 벌지도 모르고, 힘 있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생기는 순간, 나는 그의 사람이 되고 내가 가진 순수한 목적은 변질될 것이다.
 
그리고 미친 정부, 미친 나라에서 내 예술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처벌받게 될 것이다. 법의 처벌이든 다른 형태의 처벌이든, 그건 항상 생각하고 있다. 처벌을 받는다면 기꺼이 감수할 것이다. 그것 또한 내 인생의 일부로 즐겁게 받아들일 것이다. 외롭지만 이건 내 직업이고 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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