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아트 뒷담화 14편. 포스터 부착 여행

  • 조회 1485
  • 2014.05.21 13:42
 
2012년 11월 6일부터 며칠 동안 스펙터클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소위 말하는 단일화 포스터를 들고 6일엔 종로와 신촌, 7일엔 여의도, 8일엔 부산에 갔다가 대로변에 잠복하고 있는 경찰들 때문에 포기하고 광주로 갔다. 체포되는 건 괜찮은데 내가 가지고 있던 포스터를 빼앗기는 게 싫어서 부산은 포기했다. 내 이메일과 휴대전화도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7일 새벽, 여의도 일대에 포스터 50장을 붙이고 집에 들어와 자는 동안 서울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으니 당장 출두하라는 전화가 왔다. 잠을 좀 더 자야겠기에 오후 2시로 약속을 잡고 3시에 출두했다. 조사받으면서 부산과 광주에도 붙일 거라고 진술했더니 조사관께서 안된다며 다른 지역에도 붙이면 처벌을 면할 수 없다며 겁을 주었다.
“그럼 조금만 더 붙일게요.”
이렇게 말하고는 조사를 마쳤다. 그리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데 부산 지역 경찰서에서 정신없이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분 중 어느 누구도 하지 말라는 말은 안 했다. 언제 붙이느냐, 어디에 붙이느냐, 몇 장 붙이느냐, 누구랑 붙이느냐 등등 이런 것만 묻고는 끊어 버렸다. 뭔가 이상했다.
 
부산에서 날 도와줄 동료 작가가 잔뜩 쫄아서 전화가 왔다. 서부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언제 나가느냐는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우린 이메일과 전화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다. 대체 경찰이 그 친구 전화번호를 어찌 알았을까?
 
부산의 각 담당 부서 경찰들이 잠복하고 있다는 말을 누군가 전해줬다. 이런 여러 사정에 의해 결국 부산은 포기하고, 광주로 운전대를 틀었다. 광주로 가는 길에 또 경찰께서 전화하셨다. 역시 내가 광주로 가는 걸 알고 있었다. 예리한 양반들∼ 고맙다고 했다. 덕분에 일찍 퇴근하게 돼서 좋다고 했다. 진심이 느껴졌다.
 
9일 광주에서 대미를 장식하고 돌아왔다. 천 장 가지고 출발했는데 돌아올 때 보니 30장 남았다.
 
미술이 가진 힘이 있다. 그 힘 때문에 수천 년간 예술은 역사에서 살아남아 인류에게 영향을 끼쳤다. 골목길에 누군가가 ‘소변 금지’라고 써놨다고 치자. 그 글씨를 보고 소변을 참는 놈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물이 나오는 작대기 하나와 가위를 그려 놓은 그림을 본다면 소변볼 놈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미술이 가진 힘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의미 있는 어떤 그림은 우리 의식에 큰 영향을 준다.
 
나에겐 미술에 대한 재능이 약간 있는 거 같다. 그러나 내가 가진 재능을 갤러리 관장이나 부자들에게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간혹 내가 붙인 포스터를 누군가 유심히 볼 때가 있다. 그것이 내가 이 짓을 계속하는 이유인 거 같다.
 
(이하, 역사의 추억 시리즈 – Co+Innovation, 2012)
 
 
 
 
친구 중에 서대문 쪽에서 요양원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다. 온 집안 식구가 요양원에 매달려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느닷없이 범법자가 되었다.
 
지난 정권의 법에서는 누구나 요양원을 차릴 수 있었으나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그 법에 ‘재산 몇십억 이상의 재단이나 종교 단체’만이 요양원을 설립·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더 우스운 일은 법이 개정되자마자 종교 단체에서 찾아와 명의를 빌려 주는 조건으로 턱없이 많은 돈을 요구한단다.
 
그놈이 그놈이라며 정치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사람이 꽤 있다. 법은 1년에 수만 개나 바뀐다. 그중엔 새로 생기는 법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존의 법이 개정된 것이다.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그 법은 부자들을 위한 법으로 조금씩 개정되고,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서민을 위한 법으로 조금씩 개정된다. 그놈이 그놈이란 말은 참으로 어리석은 말이다.
 
물론 현실 정치에서 절대적으로 훌륭한 정치인은 없다. 그래서 우린 겨 묻은 놈을 찍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겨 묻은 놈을 지도자로 만드는 것도 참으로 어렵다. 똥 묻은 놈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못 배운 무지렁이일수록 왜 부자들을 위한 정당에 투표할까? 그 이유를 우리는 알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거대한 타락과 무영혼의 시대에도 등대의 서치라이트는 돌아가야 한다.
 
역사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다. 역사는 항상 새로운 코드를 찾는 단파 주파수가 되어 세상을 떠다니다가 어느 순간, 역사에 필요한 새로움을 찾아내고 좋은 작품에는 열광한다.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날릴 만한 세상의 코드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찾아내고, 그렇게 슈퍼스타가 탄생한다.
 
예술가는 세상의 꽁무니를 쫓아가면 안 된다. 자신이 믿고 있는 세상과 신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만들다 보면, 그리고 세상 발전에 꼭 필요한 코드가 있다면, 세상은 그 예술가를 찾아낸다.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 – 이건희, 2012)
 
오래전 첩첩산중, 깊은 산 속에서 혼자 3년을 산 적이 있다. 고흐와 피카소로 이름 붙인 개 두 마리와 함께 살았지만, 눈 쌓인 겨울날 먹이를 찾아 내려온 멧돼지 무리에게 개기다가 한 마리는 장렬하게 전사하고 한 마리는 실종됐다.
 
나름 사정이 있어서 산속에 혼자 살게 된 것인데, 당시 알바하면서 돈을 꽤 벌었기 때문에 산속에서 홀로 살 수 있었다. 또 돈이 필요할 때면 알바하러 서울에 다녀오곤 했다. 하지만 곧 아이엠에프(IMF)가 찾아왔고 모든 알바 자리가 전멸했다. 몇 달 동안 10원 하나 벌 수 없었다. 전기와 전화는 물론이고 보일러까지 모두 끊겨 영하 15도의 산속 냉골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다. 너무 추운 날이면 자면서 저절로 이빨이 부딪혀 딱딱 소리가 났다. 먹을 것이 없어서 산짐승을 잡아먹고 살았다.
 
그때 나날은 내 인생 중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었다. 최악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것보다 더한 고통은 외로움이었다. 몇 달 동안 사람 구경을 못 했다. 산 밑으로 들일 나가는 노인 양반을 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무슨 만화 같은 얘기지만 사실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산에 올라가 목을 맸다. 정신을 차려 보니 몸이 땅에 내동댕이쳐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가 생각보다 약해서 부러진 거 같았다. 목이 아파 일주일 동안 물 한 모금도 못 마셨다. 당시 난 목만 다 나으면 다시 올라가 목을 매려고 했다.
그리고 17년이 흘렀다.
 
당시 사건은 내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이 세상 그 어떠한 것에도 욕심이 사라졌고 두려움도 사라졌다. 야망도 없어졌고 인생의 목표 같은 것도 관심 없어졌다.
 
누군가와 경쟁해야 한다면 난 언제든지 내 몫을 양보한다. 누군가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한하면 언제든 도와준다. 누군가가 돈이 없어 힘들어하면 기꺼이 내 돈을 준다. 물론 나도 부자가 아니라서 조금밖에 못 주지만.
 
인생은 그냥 사는 것이다. 부지런히 살든 게으르게 살든, 어떻게 가도 가는 게 인생이다. 인생의 나쁜 일에도 덤덤해지고 좋은 일에도 덤덤해졌다. 그냥 자연의 순리, 우주의 순리에 따라 살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너무 중요한 걸 깨달았다. 내 인생은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하기에도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걸. 남이 만든 가짜 인생이 아닌 나의 진짜 인생을 살기에도 너무 바쁘다는 걸.
 
겁도 없이 어떻게 정치인을 그렇게 강하게 그릴 생각을 했느냐고, 이런 말을 간혹 듣는다. 사법기관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정치 권력자들과 경제 권력자들을 마음껏 조롱하고, 인류애를 가진 지도자를 찬양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이생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일은 없을 거 같다. 이 천박할 대로 천박한 자본주의 세상은 나같이 반자본주의적 사상을 가진 놈에게는 좋은 기회를 줄 것 같지 않다.
근데…… 상관없다. 결국 난 나대로 사는 게 가장 행복했다.
 
 
(이하, 눈물 시리즈 – 아웅산 수치, 룰라, 간디, 2012)
(이하,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 – 귀여운 고릴라, 설치, 2012)
 
 
태양은 지구보다 130만 배나 큰 행성이다. 그런데 태양보다 210배나 큰 행성을 발견했단다. 우리는 아무리 기를 쓰고 똥을 싸며 지랄염병을 떨어도 결국은 3차원의 한계에 머문다. 그러나 태양계 밖 다른 행성은 4차원, 5차원, 어쩌면 10차원의 에너지 파장을 가진 우주 공간이 있을 것 같다. 난 정말 그곳이 궁금해 미치겠다.
 
(이하, 역사의 추억 시리즈 – 자화상, 인화지에 프린트, 2012)
 
요즘도 난 자살을 꿈꾼다. 이 세상이 나 같은 놈은 필요 없다고 한다면, 어느 누구도 내 인생에 축복을 주지 않는다면, 난 언제든지 아무 미련 없이 이생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우주 공간에 가서 또 열심히 부대끼며 살아볼 것이다. 하지만 목매지는 않을 것이다. 그땐 정말 목이 아파 죽는 줄 알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점심으로 짬뽕 먹을까 짜장면 먹을까 하는 고민이 참 부질없는 거 같지만, 그래도 점심으로 뭘 먹을까를 선택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오늘 점심으로는 얼큰한 짬뽕을 먹을 것이다.
 
 
[이 게시물은 이 하님에 의해 2015-02-16 12:30:25 Leehaart.com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이 하님에 의해 2015-02-16 12:31:25 [복사본] Leehaart.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