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아트 뒷담화 15편. 법정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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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1 13:46
 
 
2009년 6월에 미술 작업을 시작했으니 벌써 내 작가 인생도 6년째 접어들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6년짜리 ‘늙은 초보 작가’지만 웬만한 작가가 수십 년간 경험할 일을 모두 경험해 본 느낌이다.
 
법정에서 지루한 싸움이 마무리되고 있다. 앞으로 또 다른 재판이 시작될지도 모르지만. 재판정에 하도 많이 가다 보니 정말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기분이었다. 경범죄처벌법 재판은 2심까지 선고유예가 나왔고, 상고하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1심과 2심, 대법원 판결까지 모두 무죄가 나왔다.
 
 
(기소된 그림들)
 
검찰에 처음 조사받으러 가던 날이 생각난다. 그 전날 저녁 염색 작업을 하는 동료 작가가 응원 차 저녁을 사주겠다고 해서 식당으로 갔다. 설렁탕을 시켰다. 하지만 난 딱 두 수저만 떠먹고 숟가락을 놓았다.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그만큼 검사를 만나러 가는 것이 두렵고 긴장되었다. 누구나 처음에는 그렇지 않은가.
 
그 후로 사법기관에서 조사받은 게 스무 번쯤 되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긴장하지 않는다. 별일 아닌 거로 오라고 할 때는 정말 귀찮다. 그럼에도 즐겁게 놀다 오려고 노력한다. 조사를 하는 분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직장인이다. 그분은 그분의 일을 하는 거다. 우리와 다른 점은 그분에게 권력이 있다는 거다.
 
처음 조사받을 때는 그분을 설득시키거나, 또는 내 행위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설명이 장황해졌고, 말이 길어지다 보니 실수를 하게 된다. 인간의 언어라는 것은 절대적인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말이 가진 논리적 약점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조사관은 용의를 찾는 것이 직업이다. 매일 수없이 많은 용의자의 말을 듣는다. 그 말에서 약점을 찾아내는 것이 그분의 직업이다. 프로페셔널이다. 그러니 그분을 설득하려고 하면 안 된다. 사실 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삶의 궤적이 너무 다른 사람끼리는 소통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언어와 사법기관의 언어는 다르다.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기관에서 조사받을 때 자신을 변호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기소 여부는 조사를 진행하는 분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웃대가리’가 대충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인 게임은 재판에서 이루어진다. 재판에서는 전혀 엉뚱한 문제로 다투기도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과 법에서 다루는 상식은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용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은 혐의를 입증하고자 하는 조사관과 혐의가 있는 용의자가 벌이는 심리 게임이다. 때로 조사관은 용의자의 심리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강력한 ‘돌직구’를 던지기도 한다. 상대에게 어퍼컷을 한 방 먹여 주춤할 때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불리한 진술을 묵비할 수 있는 권한이 용의자에게 있지만, 현장에서는 무조건 묵비하고 있는 것이 쉽지 않다.
 
내 경우에는 묵비권을 행사하지 않지만, 최대한 짧게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경험해 보니 사법기관 중 검사님의 조사 방식이 강력하고 세련되긴 하다. 실력이 좋으시다. 검사들은 용의자의 신체를 구속할 수도, 벌금을 때릴 수도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권력이 있기에 권위적이고 오만한 검사들도 많다. 불쾌한 경험이지만 굳이 대들지 않는 것이 좋다. 날 담당했던 검사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을 기소하지 않는다면 모든 예술가가 거리에 쏟아져 나와 그림을 붙여댈 것이다. 그리되면 그 사회적 비용을 어찌 감당하느냐. 유감이지만 기소하지 않을 수 없다.”
대략 이런 취지의 말이었다. 언뜻 들으면 일리 있는 말이다. 난 이렇게 대답했다.
“게이 퍼레이드를 본다고 다 게이가 됩니까?”
 
거리에 그림을 붙이는 것이 무죄가 된다고 해도 모든 예술가가 거리로 나오지 않는다. 설사 그리된다 해도 예술가끼리 교통정리가 다 된다. 법이라는 것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판단하는 거 같다.
 
 
(전시장에서 가려진 작품들)
 
그동안 많은 조사관을 만나면서 잊을 수 없는 분이 있다. 조사를 받을 때는 영상 녹화를 한다. 쉬는 시간에 잠깐 영상을 끈다. 조사관 두 분이 있었는데 쉬는 시간에 한 분이 잠시 자리를 비웠고 한 분이 남아 있었다. 그분이 머뭇거리다가 조용하게 한 말씀을 하셨다.
“작가님∼ 작가님 팬입니다. 파이팅∼!”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얼떨결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스러워서 고맙다는 대답만 했지만, 이 에피소드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조선구보 배포)
 
 
(댓글박근혜 종북김정은 배포)
 
그동안 있었던 재판 가운데 특히 잊을 수 없는 재판은 선거법 위반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다. 국민참여재판이란 배심원 9명이 형사사건을 판결하는 재판이다. 아침 9시에 시작하여 밤 10시에 끝났으니 정말 지독하게 힘들었다. 재판 과정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불리했다. 온종일 재판정에서 진행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보면 분위기가 보인다. 민변 소속 우리 변호사도 불리해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쉬는 시간에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는 말을 했다.
 
솔직히 나야 판결에 크게 상관하지 않지만, 다만 너무 고생한 변호사들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국민참여재판의 맨 마지막 행사는 피고인 최후 변론이다. 최후 변론에서 발표할 내용을 종이 6장에 써서 갔지만, 배심원 앞에 서니 정말 기억이 하나도 안 났다. 종이를 아예 덮고는 하고 싶은 대로, 나오는 대로 마지막 변론을 시작했다.
 
시골에서 젖소나 키우던 소년이 어떻게 그림에 재능을 가지게 되었는지, 축산학과를 가려다가 느닷없이 왜 미대를 가게 되었는지, 만화를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던 사람이 왜 미술 작가의 뜻을 품게 되었는지, 왜 정치인들을 그리게 되었고 왜 포스터를 만들어 벽에 붙이게 되었는지, 왜 내 행위가 무죄인지 등이 엄청나게 끓어오른 무언가가 폭발해 버리듯이 터져 나왔다. 자리로 돌아와 시계를 보니 20분이나 얘기했다. 최후 변론의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다.
 
“솔직히 난 그림을 꽤 잘 그립니다. 나에겐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제법 있는 거 같습니다. 예술을 한다는 건 작가의 모습을 조형을 빌려 표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했던 내 작업은 내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나에게 유죄를 주신다면, 그것은 나의 모습을 부정하라는 국민의 뜻으로 알고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절대로, 어떠한 그림도 그리지 않겠습니다. 무죄를 주신다면 더 열심히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가 되겠습니다. 언젠가 언론에서, 또는 누군가로부터 훌륭한 작가가 된 내 모습을 보시거나 듣게 된다면, 오늘 무죄를 선택한 보람을 얻으실 겁니다.”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오만방자한 이야기였지만, 당시 감정이 격해지다 보니 그 말이 나와 버렸다. 그리고 결론은 무죄가 나왔다. 판사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다음부터는 눈치껏 잘하세요∼”
 
재판의 모든 행사가 끝나고 복도로 나가니 20명 정도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인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분들이었다. 그중에는 배심원들도 있었다.
 
 
(눈물시리즈 포스터 부착)
 
(한국 분들이 절 알아보시고 인증사진을 찍으셨습니다)
 
(포스터에 관심있는 외국인과의 대화)
 
워싱턴 DC 전시
워싱턴 DC에 있는 아메리칸 대학 박물관(American University Museum)에서 4월 1일부터 6월 1일까지 열리는 “두개의 거울(Double Mirror)전”에 참여한다. 본인의 작품은 “귀여운 독재자”시리즈 13점이 참여한다. 뉴욕에서 활달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들 강익중, 김아타, 조덕현씨 등 30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다.
 
(“두개의 거울”전 브로셔)
 
(“두개의 거울”전 브로셔)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 – 귀여운 김정은, 혼합재료, 120x160cm, 2014)
 
부자들이나 메이저 미술 시장에서 내 작품을 사러 온 적은 ‘한 번’도 없다. 내 작품을 사고 싶어 연락하는 사람은 보통 월수입 백만 원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싼 가격에 작품을 팔겠는가. 재료비 수준만 받고 작품을 판다. 일주일 동안 만든 작품을 십만 원에 준 적도 있다. 또 내 작품을 사러 오는 사람 중에는 갤러리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미술 작품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단다. 난 그런 말을 들을 때 작가로서 가장 행복하다.
 
그동안 많은 곳에서 전시해 왔지만 대부분은 갤러리가 아닌 곳, 상가 건물이나 카페, 대안 공간 등에서 했다. 누구 눈치 안 보고 내 맘대로 할 수 있어 이런 곳이 편하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작품을 건 적도 있지만 대부분 끝까지, 제대로 가본 적은 없다. 작품이 치워지거나 가려져야 했다.
 
재판이 시작된 후로는 포스터를 더 이상 벽에 붙이지 않는다. 그 대신 지하철역에 다니면서 출입구에 백여 장씩 두고 온다. 기소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겨서 지하철역에 뿌리고 다니는 것인데, 오히려 이것이 효과가 더 좋다. 검찰에 감사의 막걸리라도 대접해야겠다.
 
 
(오늘의 그림일기, 140302)
 
(오늘의 그림일기, 140324)
 
 
기자를 부른 적이 없어서 나만 아는 해프닝으로 끝난 적도 많지만, 이제는 좀 유명해지다 보니 포스터를 뿌리면 바로 기자들이 알아서 전화를 한다. 어느 순간 포스터 작가라는 이미지가 생긴 거 같다. 나만의 캐릭터가 생겨서 좋은 점도 있는데, 나도 예술가이다 보니 사건, 사고를 다루는 사회부 기자 말고 내 작품성을 알아봐 주는 문화부 기자에게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
 
조선일보를 패러디한 조선구보(朝鮮口報)를 2천 장 만들어 지하철역 15곳에 뿌릴 때는 너무 이른 새벽에 나갔기 때문인지 30분 만에 증발해 버렸는데, 대부분 어르신들이 가져가셨다. 어르신들은 조선일보인 줄 알고 가져가셨고, 젊은 친구들은 조선일보인 줄 알고 가져가지 않았다.
 
‘댓글 박근혜, 종북 김정은’ 포스터는 댓글로 정권을 잡은 한국의 대통령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종북을 이용하는 시국을 풍자했는데, 보는 사람의 해석은 정말 다양했다. 특히 보수 신문 중 하나는 너무 악의적으로 해석한 기사를 써서 몹시 성질이 나기도 했다. 이 포스터는 4천 장을 만들었고 질이 좋은 두꺼운 종이에 인쇄해서 인쇄비가 부담되었다. 인쇄비를 해결하려고 에스엔에스(SNS)에 사인한 포스터를 한 장에 만 원씩 판다는 광고를 올렸더니 하루 만에 70장이 나갔다. 그걸로 인쇄비를 해결했다.
 
2014년 3월 9일, 뉴욕 맨해튼의 스코프 아트 쇼 입구에 눈물 시리즈 인물 9명을 붙였다. 눈물 시리즈 인물은 총 15분이었으나 8장은 공항 수하물 센터에서 분실했다. 뉴욕의 3월은 아트페어 시즌으로 스코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트페어다. 포스터를 붙인 역사상 가장 긴장감 없이 붙였을 것이다. 이곳에서 이런 일로 기소될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포스터를 붙이고 있으니 정말 많은 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림이냐 사진이냐, 어떻게 그린 것이냐, 파는 거냐, 얼마냐, 이들(노무현, 김대중, 백기완, 문익환)은 대체 누구냐, 넌 어디 출신이냐, 이들을 그린 이유가 뭐냐, 명함 있느냐 등등 정말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기에 도망쳐야 했다. 내 영어가 짧기 때문이다. 때론 검찰보다 영어가 더 무섭다.
 
정치를 가지고 예술을 하는 것은 예술가의 특권이다. 우린 자유로운 사람이므로 예술가는 자유를 꿈꾸어야 한다. 그래서 정치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것은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성공한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목소리와 사상이 서로 공존하며, 서로 존중해 주는 사회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예술 작품이 사랑받으며, 어떤 탄압도 없다. 민주주의가 덜 성숙한 사회라면 예술가가 나서야 한다. 어떤 불편함에도 굴하지 말고 과감하게 세상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것이 예술가의 숙명이고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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