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아트 뒷담화 16편. 여우비 프로젝트

  • 조회 1428
  • 2014.11.04 08:50
 
시위는 주류 권력과 비주류 권력의 충돌이다. 권력이란 힘이다. 그 힘을 이용해 좋은 일을 할 수도 있다. 좋은 권력이든 나쁜 권력이든 시위는 주류와 비주류 권력 간의 힘의 격돌이다. 힘과 힘의 충돌에서 때로는 유혈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고, 고소와 고발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시위는 세상을 ‘어렵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예술은 주류 의식과 비주류 의식의 충돌을 일으킨다. 사회 구성원은 그 사회의 관습이나 법에 영향을 받으며, 특정한 문화와 의식을 가지게 된다. 이 문화와 의식은 시공간에 따라 상대적이다. 예를 들면, 100년 전과 현재 관습이 다르고, 한국과 미국의 관습이 다르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시공간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믿고 있는 관습과 의식이 깨어질까 봐 두려워한다. 기존의 틀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크게 실패도 하지 않지만 새로움을 창조하기도 어렵다.
 
예술은 새로운 철학을 제시하며 기존 의식에 도전한다. 새로운 철학이나 의식이 그 사회에 합리적이거나 진보적인 메시지를 준다면, 그 사회 구성원은 이를 서서히 받아들인다. 그래서 예술은 세상을 ‘자연스럽게’ 변화시킨다. 북한 민중이 남한 드라마를 보면서 변하듯이.
 
 
 
 
 
 
 
 
 
2014년 8월 15일, 우린 첫 번째 ‘여우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우비의 빗방울 하나하나로 썩은 찌꺼기들을 시원하게 쓸어버리자는 의미로 여우비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붙였다. 토플리스 시위를 하는 송아영 씨는 전체주의 국가를 상징했던 교련복을 비키니로 만들어 입은 채 군인처럼 행진했고, 전국을 다니며 벽화를 제작하는 오소영 씨는 온몸에 물감을 바르고 나와 시민에게 붓을 주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별을 자신의 몸에 그리도록 했고, 현직 의사이면서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노래를 직접 작곡해 부르는 박슬기 씨는 생목으로 공연했고, 인문학 카페를 운영하는 홍승희 씨는 역시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 깃발을 들고 동참했으며, 노래하는 탁영주 씨는 시원한 목소리로 깊이 있는 노래를 불렀으며, 평범한 주부, 학생, 연극인, 화가 등도 나와 자신의 퍼포먼스를 했는데, 서울역에서 출발해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 입구 삼청공원까지 행진했다. 나는 정치인이 그려진 엽서를 가져와 사인해서 한 장씩 나눠드렸다.
 
가는 동안 우린 무수히 많은 경찰의 벽을 만났다. 그럴 때면 우린 그 자리에서 퍼포먼스를 한다. 우리는 예술을 하는 거였지만 경찰들 눈에는 브이아이피(VIP)의 용안만 보였나 보다. 굳이 경찰과 싸우지 않았다. 서울 거리엔 생각보다 많은 골목길이 있다. 경찰이 길을 터주지 않으면 돌고 돌아 삼청공원까지 갔다. 헌법에 보장된 예술의 자유를 누리기도 참 어려운 나라다.
 
여우비 프로젝트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대통령 탄핵전’을 열고 싶었지만 전시장을 구할 수 없었다. 어차피 전시장에 못 들어갈 것 같아 길바닥에서라도 전시하려고 준비하다가,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에스엔에스를 통해 사람을 모았다. 10여 명이 모였다. 처음에는 딱 한 번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우린 정말 놀라운 경험을 했다. 개성 강한 예술가 각자가 뿜어내는,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는 그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한 감동이었다. 그 감동은 두 번째 여우비 프로젝트의 힘이 되었다. 두 번째는 20여 명이 모였다. 세 번째는 제주 프린지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제주 시민과 함께했다.
 
 
어느 유명 작가의 작품 발표회에 간 적이 있다. 짚신에 꽃을 올려놓고 물 위에 둥둥 띄운 사진을 세월호를 표현한 거라고 설명했다. 과연 이게 세월호의 비극을 표현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국민의 의식을 통제하는, 예술가의 의식까지도 통제하는, 이런 국가에서는 예술가들이 최고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짚신에 꽃을 꽂고 물 위에 띄우는 게 최선일 수 있다. 이렇게라도 표현해준 게 감사할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제도권에 관심 없는 예술가다. 다만 예술의 사회적 기능에 관심이 있다. 나는 심미적 탐구 따위는 하고 싶지도 않고, 부자들을 위한 꽃 그림은 그리고 싶지도 않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각성한 시민이 가진 의식을 정리해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시민이 가진 사회적 상처를 보듬고, 망할 세상을 풍자하고, 부패한 권력자를 엿 먹이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건 원래 예술가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절대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서 민주주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정권에서는 이런 최소한의 장치조차 누리지 못하는, 민주주의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힘 있는 누군가가 드릴로 머리에 구멍을 뚫고는 하나의 가치를 억지로 밀어 넣고 있는 듯하다. 그 가치는 오로지 권력자와 가진 자들의 이득을 위해 강제하는 것이다. 그 길만이 옳은 길이니 닥치고 그 가치를 따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가치는 정답이 아니다. 다양함을 즐기고 다양함을 생산해 내는 시대에는 누구도 정답이 될 수 없고, 누구나 정답이 될 수 있다. 신기술을 이용해 자신만의 시장을 만드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라는 입체적 소통 도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어쩔 것인가? 인터넷을 막고 휴대전화도 빼앗을 것인가? 
 
 
어떤 문화 평론가도, 어떤 미술 비평가도, 어떤 중앙지 기자도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다. 그런 걸 기대한 적도 없다. 그러나 우린 알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동과 격정은, 오후 내내 10킬로미터를 걸으며 대여섯 번의 퍼포먼스를 하는 여우비끼리는 알고 있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되어 이 불쾌한 세상을 싹 쓸어버리고자 하는 여우비가 자랑스럽다. 이 프로젝트가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우비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 있는 힘껏 굵은 빗방울이 되고 싶다.
 
 
 
대통령이란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다. 최고 리더여야 한다. 하지만 현 대통령은 어떤 리드도 못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통령직을 수행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 분이기 때문이다. 기간산업에 매진했던 산업화 시대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는 사람보다 국가가 우선이었다. 어느 면에서는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21세기 현재 우리 시대가 주력해야 할 것은 산업화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발전이고, 미래 시대를 위한 준비다. 절대적 사상이나 일원적 가치가 지배하던 모더니즘 시대는 지났다.
 
다양한 사회적 욕구를 표현하고, 소수의 의견이 존중되는 분위기에서 건강한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현 대통령은 부친의 정치에 대한 오마주를 펼치며 철 지난 독재의 길을 걷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철학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예술가로서 수준이 안되는 정치의 퇴출을 외칠 것이다. 이것은 예술가로서 의무이다.
 
PS : 여우비 프로젝트는 계속 됩니다. 관심있는 분은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이 게시물은 이 하님에 의해 2015-02-16 12:30:25 Leehaart.com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이 하님에 의해 2015-02-16 12:31:25 [복사본] Leehaart.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