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아트 뒷담화 17편 - 미친정부 지명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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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04 08:59
 
2014년 10월 20일 월요일.
 
두렵다.
나의 작가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이 거지 같은 세상에서 역사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나의 행위가 어떠한 가치도 의미도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무섭도록 두렵다.
 
근데 내가 이 짓을 왜 할까?
나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 팔자인가 보다.
 
새벽부터 비가 온다.
옥상에 올라가 테스트를 해봤다.
전단지가 철판 떨어지듯 툭, 떨어져 버린다.
지하철에 뿌리는 게 나을 거 같다.
 
3만 5천 장…….
혼자 들고 가기엔 양이 너무 많다.
용달차를 불렀다.
한숨도 안 자고, 아니 못 자고 출발했다.
날 도와줄 동료들과 통화를 하면서 작전 지시를 했다.
다들 긴장해 있다.
 
오전 11시에 광화문에 도착했다.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경찰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동료들에게 전단지를 두 덩이씩 나눠주고
각자 흩어졌다.
 
난 동화면세점 옥상으로 올라갔다.
턱이 2미터가 넘는다.
밖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잘됐다.
 
낮 12시 정각, 첫 뭉치를 꺼내 밖으로 던졌다.
순식간에 끝이 났다.
이 퍼포먼스를 준비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돈과 마음을 썼던가.
근데 막상 이 행위는 2분 만에 끝이 났다.
그렇게…….
여우비 4천5백 부가 내렸다.
 
그리고 나는 현장에 취재 온 기자와 함께 체포되었다.
취재 온 기자까지 몇 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나왔다.
덕분에 이 사건이 보도되었고
언론에서는 난리가 났다.
역시 나는 국가에서 알아서 홍보해 주는 국민 화가인가 보다.
 
엿 같은 세상, 엿 같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정말 엿 같다.
 
어쨌든 미친 정부 지명수배 전단은 세상에 던져졌다.
나의 신체가 구속될 수도, 아무 일 없을지도,
기소가 될지도 안 될지도,
재판으로 갈지도 안 갈지도, 그 어떤 것도 모른다.
그건 나의 몫이 아닌 세상의 몫이다.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원본 파일을 보내달라고 연락해 왔다.
백 명이 넘는 사람에게 남은 전단지 1만 장을 보내줬다.
 
그 사람들이 나를 대신해 거리에 뿌렸다.
4가지 없는 여우비가 구석구석에 참 많다.
 
 
 
 
 
 
 
 
 
 
지난여름에는 도그 그라운드(dog ground)가 전국에 뿌려졌다. 세월호를 풍자한 포스터다. 에스엔에스로 주문을 받아 수백 장씩 보내줬다. 서울, 부산, 인천, 광주, 대구, 대전, 남양주, 안산, 거제, 울진, 안양, 완도, 일산, 부천, 칠곡, 천안, 하남, 고양, 충주, 그리고 뉴욕, 로스앤젤레스, 독일, 영국. 그 사람들은 다시 주변 지인에게 몇십 장씩 나눠주었다. 그들은 또 지인에게 몇 장씩 나눠주고. 그렇게 포스터 2만 장은 전국 거리에 붙었다. ‘다단계 예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우리끼리 모여 파티를 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 중 4명이 사법기관의 조사를 받았고, 그중에 누군가는 기소될지도 모른다.
 
경범죄 위반자를 잡으러 형사가 4명이나 잠복했단다. 경범죄는 법 중에서도 가장 하위법이다. 택시비 안 내고 튀는 놈, 술 먹고 튀는 놈, 담배꽁초 버리는 놈 등등이 경범죄로 처벌받는다. 소위 잡범이라고 불린다. 이런 경범죄 위반자를 잡으러 경찰도 아닌 강력계 형사가 4명이 갔단다. 강간범은 한 오십 명쯤 잡으러 가나 보다. 살인범은 한 백 명쯤 가나 보다. 우리나라 치안이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졌지?
 
하루 수천 명의 불법광고물 부착자 중 왜 이것만 입건을 하는지 참 신기한 일이고, 이 포스터를 광고물로 보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경찰청에 출입하는 어떤 기자에게 들은 바로는, ‘오더’가 내려졌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것이겠지.
 
조사 담당 경찰에게 전화해 내가 시킨 일이니 그분을 풀어주고 나에게 출두 명령서를 보내라고 해도, 굳이 날 도와준 사람을 처벌하려 들었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선 최대한 책임을 진다. 범칙금도 내드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변호사도 선임해 준다.
 
택배로 보낼 때는 우체국에서 박스에 넣어 보냈다. 택배 보내느라 거의 일주일 동안 우체국에서 살다시피 했더니, 어느 날, 직원이 요구르트를 하나 건네며 홈쇼핑을 운영하는 분이냐고 물었다. ㅎㅎㅎ
 
전국으로 모두 108분에게 보냈다. 목사님, 스님, 선생님, 대리 기사, 학생, 배우, 의사, 주부, 작가, 공무원, 휴가 나온 군인 등등. 정말 다양한 분들이 자신을 소개하며 주문을 했다. 이런 불순 세력 같으니라고∼!!
 
택배를 보낼 때마다 뭔가 가슴에서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시대의 국민은 참 갈증이 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정치에 대한 갈증, 대한민국에는 아직 정의를 믿고 있는 분이 많구나 하는 감동 같은 게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우체국에서 택배를 보내지 않는다. 경찰에서 날 도와준 동료를 우체국 택배 주소를 뒤져 찾았기 때문이다. 요구르트 더 이상 못 얻어먹게 생겼다.
 
2014년 5월 5일, 세월호 추모 포스터를 들고 진도 팽목항으로 갔다. 거대한 장례식장에 온 느낌이었다. 가족과 군청의 허락을 받아 포스터 30여 장을 붙이고 돌아왔고, 남은 포스터는 수원 시내 버스정류장과 서울시청 주위에 붙이고 다녔다.
 
최근에 누군가와 만나면 내가 항상 묻는 것이 있다.
“행복하신가요?”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왜 그럴까?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불행함을 느끼는 점도 있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정치와 정권 때문에 느끼는 스트레스, 불안감, 불쾌감이 우리를 짓누르는 거 같다.
 
통치자가 민중을 영원히 짓누를 수 없다. 역사는 때가 되면 어떤 계기로든 튀어 오른다. 그것도 아주 높이높이. 시간은 우리 편이다.
 
세상아∼ 세상아∼ 넌 언제 우리 편이 되어 줄 거니?
아직 멀었니? 얼마나 더 짓이겨져야 우리를 도와줄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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