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아트 뒷담화 25편 - 벽

  • 조회 440
  • 2017.02.08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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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거대한 벽.
다가갈수록 멀어지고
기댈수록 밀어낸다.
벽 너머의 세상을 보고 싶지만
세상은 선택된 벽만 강요한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훨훨 날아오르기를.
 
 
2015년 9월 21일.
아침일찍 홍성담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버이연합 노인들이 또 홍선생 아파트앞에 몰려와
미친짓을 했나봅니다.
홍선생님이 많이 흥분하셨습니다.
위로 겸 경호 겸 하러 옷을 입고 그분 댁으로 출발했는데
괜찮다고 사양하셔서 돌아왔습니다.
 
저도 이런 경험이 많습니다. 미친정부 삐라를 뿌린 직후
왠 노인들이 광화문 건너편에서 시위를 하시는데
이하작가 한국을 떠나라...뭐 이런 플랭카드를 들고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마구 욕을 하시더군요.
그 며칠 후에 중앙지법에서 재판이 있었는데, 정문앞에서도
이양반들이 같은 집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지나던
아는 기자가 전해줘서 알게되었습니다. 헌데 그날은
재판이 연기되어 제가 가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아마도 저의 재판 정보를 전달(?)해주는 누군가가 재판이
연기된 것은 전달을 안해주셨나 봅니다. 
며칠 후 법정에 출두할때 역시 엄마부대 분들이 내 이름이 적힌
플랭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시는데, 그 앞을 지나는 저의 얼굴을
모르시더군요. '수고하십니다' 인사드리고 지나쳤습니다.
 
홍성담선생의 작품은 참으로 기괴하고 과감하죠.
작가의 의식이나 감정을 작품에 적나라하게 담습니다.
저 또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하여 작품을 만들지만
그분과 저는 스타일이 조금 다릅니다.
 
그분은 누구나 다 아는 예술가입니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감성이나 감정대로 작품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건 예술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작품은 대중들에게 평가를 받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대중들의 평가가 법의 평가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그림이 떼이는 것은 정치의 영역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사이래로 정말 신기한 일은... 보수정권이나 독재정권은 꼭
예술의 영역까지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가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못된 버릇이고 어리석은 짓이죠.
 
홍선생님이 재작년쯤 산부인과에서 박근혜가 박정희를 출산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근데 사실 다른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홍선생님 작품 중
그거보다 더 센 버전이 있습니다. 여성의 성기를 뚫고
박정희가 기어나오는 그림이 있습니다. 아마 그게 대중적으로
알려졌다면, 무엇보다 여성운동계에서 난리가 났을 겁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그림을 먼저 그린 분이 계십니다.
여성의 성기에서 대통령들, 교황, 예수 등등이 기어나오는
그림입니다. 이건 무려 80년대에 그려진 그림이고 지금은 작고하신,
풍자화로 유명했던 Irene 이라는 미국의 여류화가입니다.
 
 
 
근대 이후 예술은 표현의 자유라는 거대한 가치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근대 이전의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었습니다. 노예수준의 장인들이 왕이나 귀족들의
명령에 따라 멋지고 아름다운 물질을 만들어 내었죠.
예술이 표현의 자유를 득템한 이후 기술이나 물질의 시대가 아닌
형이상학적인 비 물질적인 정신예술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물질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대상, 철학. 미학에 도전하고
실험하는 개념의 예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한가지는 사회를 풍자하고 메시지를 주는
민중미술로 대표되는 비판적 리얼리즘의 시대도 따라왔습니다.
 
리얼리즘의 시대가 되면서 고상한 소재가 사라지고 때로는
너저분하고 흉칙한 소재가 등장했습니다. 추악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추악한 소재가 등장해야겠죠.
 
예술은 스폰지여야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들을
받아들이고 흡수하여 물리적 작용과 화학적 작용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벽에 둘러쌓인 세상에
다른 세상이 있을수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기존가치에 풍부함을 주고
그리고 그 풍부한 세상이 예술을 발전시킵니다.
 
 
 
 
 
정치는(특히 보수정치) 본능적으로 시민들의 의식을 가지려고 합니다.
독재자들이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반드시 가지려 하는 것이 있는데
언론, 교육, 예술입니다.
언론과 교육은 권력과 약간의 이해관계가 있기에 쉽게 변심하지만
예술은 정말 지독하게 말을 안듣는 녀석입니다.
 
예술가는 표현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건
목숨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동안 홍성담 신학철 박영균 오윤 등등의
숱한 화가들이 옥살이를 했든가 고문을 당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갖지 못한 것이 예술입니다.
정치적으로 예술을 단죄시킬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술가들의 뇌구조가 그렇게 생겨 쳐먹었습니다.
피카소는 독재자 프랑코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게르니카를 그렸고 찰리채플린은
매카시광풍에도 자신의 영화를 만들다 스위스로 쫒겨났습니다.
 
 
뒤에서 몰래하는 것도 아닌, 아주 대놓고 못된 짓을 일삼는 정부가
있고 그 타락한 정부를 보며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받은
타락한 사람들이 순진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난 이 현실이 미치도록 슬프고 화가 납니다. 그래서 다시 풍자그림을
그립니다. 내 풍자그림이 세상을 변화시키냐구요? 모릅니다.
그 변화를 기대하면서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내가 할 일입니다.
내가 이 치사하고 타락하고 더러운 세상에 저항하는 것이 나의
일이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