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아트 뒷담화 26편 - 쓰레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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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08 18:11
2015년 12월 8일
 
 
언제부터인가부터 "쓰레빠"만 신고다닙니다.
"쓰레빠" 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더니...
<‘슬리퍼(slipper)’ 속되게 이르는 말>
이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그냥 쓰레빠로 쓰겠습니다.
속된 거 좋아하니까.
 
집에서야 당연히 항상 쓰레빠를 신고 있고 밥을 먹으러갈때도
시내에 나갈때도 검찰조사받으러 갈때도 재판받으러 갈때도
광화문집회에 갈때도 쓰레빠를 신고갑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봅니다.
발시렵지 않느냐고.
정말 안시렵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왜 발이 안시려운지.
그냥 쓰레빠가 편합니다. 최고의 신발입니다.
 
눈오는 겨울에도 맨발에 쓰레빠를 신고다닙니다.
내가 발이 안시렵다는데 왜 그렇게 측은한 눈빛으로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영하 10도가 넘어가면 양말을 신기도 합니다.
그땐 발이 시렵거든요.
 
시골집에 쓰레빠를 신고 갔더니 아부지가 쓰레빠를 태워버리시고
안신으시는 구두를 건네주셨습니다.
아부지 죄송하지만 저 쓰레빠 많습니다. 아부지 구두는 잘보관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저와 인연이 있는 분이 왜 요즘 뜸하냐고 묻습니다.
그러고보니 풍자일기도 안하고 대외적인 활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거진 한달은 안한거 같습니다.
검찰조사를 많이 받다보니 다 알게되었습니다.
저의 신상을 탈탈 털고있다는 것을.
폰과 계좌는 물론 우체국택배까지 뒤져보시더군요.
나야 원체 그런놈이니 그러려니 하는데
내 주변사람들이 상처받고 뒷조사 당하는 것이 무척 신경쓰입니다.
심해도 너무 지독하게 심합니다.
얼마전 또 기소되어서 6번째 기소를 당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재판이 3개입니다.
그래서 뭔가를 드러내는 일을 안하고 있습니다.
조신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동안 인터뷰 요청도 모두 거절했었는데
몇번 거절했더니 연락도 안옵니다. 
언론과 인터뷰하는 것이 솔직히 좀 불편합니다. 
 
 
나름 바쁘게 살고 있기는 합니다.
먹고살아야하기에 초상화를 그리느라 바빴습니다.
 
일주일후에 수원을 떠납니다.  
수원은 멋진 곳이었습니다. 몇년 간 정들었던 곳인데.
장안공원도 곤드레나물밥집도 유치회관 해장국밥집도 북수원갈비집도...
이곳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모두 그리울 겁니다.
 
서울 우이동에서 새 삶을 시작할 거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시골집을 떠난 후로 지금껏 한 집에서 3년을 살아본 적이 없는 거 같습니다.
언젠가는 평생 살 내 집이 생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