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아트 뒷담화 30편 - 여혐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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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08 20:02
 
 
2016년 5월 25일.
 
예술은 고상하다는 이미지가 있는 거 같습니다.
예술은 고상하지 않습니다.
고상함을 깨야 무언가를 창조 할 수 있습니다.
극소수의 메이저 미술시장에서 생산되는 허세와
허영덩어리를 미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적당하지 않습니다.
보디가드를 데리고 다니는 작가를 본 적도 있고
7개의 공장을 가지고 있는 작가를 본 적도 있고
수십명의 조수를 데리고 대량생산하는 작가도 봤고
수십억의 돈을 버는 작가를 본 적도 있습니다.
내가 그 세계에 들어갈 일은 없습니다. 
매우 유감스럽지만 메이저 작가가 될 꿈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될 겁니다.
메이저 미술시장에 들어가는 작가는 그럴만한
조건이 갖춰져야 들어갑니다.
메이저는 메이저들끼리 놉니다. 그 세계에 들어가
는 것에 관심이 있고 자신의 캐릭터가 그 세계와
맞다면 열심히 해보세요. 그러나 그 세계가 자신과
맞지않다면 자신만의 시장을 찾는게 낫습니다. 
나에게 관심없는 메이저세계에 내가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습니다.
미술은 서민들의 놀이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럴날이 올겁니다. 
 
 
 
 
 

어떤 여성분의 뒷담화를, 어떤 여성분과 대화를 
하다가 하게 되었습니다.
대화하던 여성분이 정색하며 저에게 충고하듯 
말하더군요. '여혐하지마세요!'
나보고 여혐주의자라니...내가 그동안 들었던 끔찍하게 
웃겼던 이야기 중 하나였습니다. 그 뒷담화의 내용은 
일과 관련된 뒷담화였습니다. 성적인 것이 아니라.

여혐 남혐이 이슈긴 이슈인가 봅니다. 일상대화에서도 
쓰일정도가 되었으니.

10여년전, 미국의 모기지사태가 났을때,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의 차를 빼앗아가려는, 은행에 고용된 
렉카차 운전수와, 차라도 있어야 구직을 할수있는 채무자는
차를 두고 총질을 하면서 서로 죽고 죽이는 사건이 많이
났었습니다.

20여년전만해도 여성이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면 지나던 
노인양반에게 따귀맞기 일쑤였습니다. 당시엔 그게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법도 여성편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여성들 스스로 여성으로서의 권리의식이 약했습니다.

현재, 거리에서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일상적인 
일입니다. 만약 노인양반이 담배피우는 여성의 따귀를 
때린다면 깽값으로 최소한 3백만원은 받을 수 있습니다. 
금연구역에서 피우다 딱지떼는 것만 조심하면 됩니다.

인간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는 
숭고한 권리입니다. 그리고 현재 여성들이 여성들의 
권리를 외치는 것은 그럴만한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음껏 더 외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성범죄에 대해선 강력한 처벌이 되도록 하는 법이라도
통과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남자와 여자는 적이 아닙니다.
이 천박한 시대가 끊임없이 우리를 경쟁의 세계로 내몰고
갈등을 하게 만듭니다. 노인과 젊은이들이 갈등하고
영남과 호남이 갈등하고 여성과 남성이 갈등을 하게 합니다.
렉카차 운전수와 채무자의 적은 은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린 적을 보지못합니다. 바로 옆의 갈등의 대상을 적으로
인식합니다.

여성으로서의 삶만 힘들진 않습니다. 남성들도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군대에서 숱한 구타에 시달리고 가장이 되어선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힘겹게 살아갑니다. 
가상의 공포때문에 모든 남성을 적으로 매도하는건
적절하지 않아보입니다. 어떤 이데올로기든 종교화가
되면 극보수가 됩니다.

생물학적인 차이로 인해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는건
여성일수밖에 없습니다. 사회로부터 받는 상처를 
상대적인 약자에게 폭력으로 폭발시키고 알량한 권력을 
이용해 여성에게 성을 강요하고 왜곡된 성문화로 여성에게 
성을 구걸하고...
단언컨데 나는 이런짓을 해본적이 없지만 우리사회 많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여권운동은 이시대에 꼭 필요한 운동이라 믿습니다. 
그운동은 분명히 우리시대의 의식에 영향을 줄것이고, 
약간의 부작용이 생기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름의 질서를 
잡아갈 겁니다. 
때로는 저같은 놈들이 억울하게 여혐주의자 소리를 듣기도
하겠지만 그럼 어떻습니까. 이렇게 또 세상은 변해가는 것을.